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Photo : )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1] 오늘 교인들이나 설교자들의 마음 속에 율법적 요소가 너무 많음을 본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아직도 기독교의 정수인 ‘복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디 바우캄(Voddie Baucham)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이런 문장을 남겼다. “The gospel doesn’t require obedience. It produces obedience.” 우리말로는 이런 뜻이다. “복음은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만들어 낸다.’”

[2]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드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은 순종을 요구한다”라고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잘 보이기 위해 그분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해내려고 애를 쓰게 된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착하게 살고, 더 많은 봉사를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시고 칭찬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를 말한다.

[3] 우리가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분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사랑받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다.
“복음은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만들어 낸다.” 이 짧은 문장은 복음의 본질을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복음은 '채찍'이 아니다. 복음은 죽은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힘이요 생명이다. 왜냐하면 먼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4]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를 보라.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세리장이었다. 동족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살았고, 돈이라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들어오셨을 때 삭개오는 갑자기 이렇게 고백한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눅 19:8).
천하의 구두쇠 삭개오로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5]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재산을 바치라”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토색한 것의 네 배를 갚으라.”라고 협박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먼저 그를 찾아가 주셨고, 의로운 자(삭개오)라 부르셨고, 집으로 가서 머물러야 하겠다고 하셨다. 이보다 더 큰 은혜와 사랑이 또 있으랴!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가 먼저 부어지나 순종과 변화가 자동으로 열매 맺게 된 것이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진수다.

[6] 참 복음은 순종이나 헌신을 요구하지도 강압하지도 않는다. 참 복음은 순종이나 헌신이 절로 터져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 진짜 복음은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변화된 삶의 열매와 순종으로 나타나게 된다.
한 청년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늘 교회에서 “~해야 한다!”라는 말만 들으며 자랐다. ‘새벽기도 해야 한다’, ‘전도해야 한다’, ‘죄짓지 말아야 한다.’

[7] 처음에는 열심히 따라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갔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의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을 감시하는 경찰관처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탕자의 비유를 읽다가 무너졌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향해 “어째서 내가 준 돈 다 낭비해버렸느냐?”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느냐”라고 꾸짖지 않았다. 냄새나고 실패한 아들을 끌어안고 먼저 입을 맞추었다.

[8] 그 구절을 읽는 순간 청년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하나님은 내가 잘해서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변화시키시는 분이시구나.”
그 이후 그의 삶에는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도하고 싶어졌고, 억지로 하던 봉사가 기쁨이 되었으며, 죄를 즐기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다. '의무'가 '사랑'으로 바뀐 것이다.

[9] '두려움'이 '행복'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율법은 “순종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살게 되었으니, 이제는 순종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에스겔 36장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겔 36:26)

[10] 하나님은 단지 행동을 고치려 하지 않으신다. 마음 자체를 바꾸신다. 복음은 겉모습을 억지로 다듬는 종교가 아니라, 존재를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옳다. 참된 순종은 두려움에서 나오지 않는다. 은혜에 감격한 심령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억지로 맺은 열매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복음이 만들어 낸 순종은 사랑에서 시작되기에 '깊고 지속적이고 자의적'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거운 판단과 책망과 정죄가 아니다. '은혜와 사랑에 의한 자발적인 섬김과 헌신과 순종'이다. 자기 속에 억지로 순종하려 애쓰는 마음이 있다면, 아직 참 복음에 제대로 접촉되지 못한 상태라 생각하면 된다.
“복음은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만들어 낸다’.”
꼭 기억하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