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경화(硬化)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한국교회가 근본주의 노선으로 기울고 있다. 소위 아스팔트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세력으로 교회가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 매우 위험한 징후다. 극우로 대변되는 한국 보수주의 모습은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1920년대에 미국 보수주의의 한 축이었던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운동과 너무 닮았다.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운동은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출발하였다. 자유주의 신학 사상과 공산주의 사상이 기독교를 위협할 때 맞서 싸우기 위해 시작된 신학운동이다. 1920년대에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 사상에 맞서 싸우던 미국 보수주의는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로 나눴다. 근본주의 신학은 역사적 의미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 기독교 신앙을 지키려는 초교파 연합운동이었다. 그 출발을 기준으로 볼 때 미국 근본주의는 건강했다.

1920년대에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Fundamental theology)은 강하고 힘이 있었다. 당시 근본주의 신학의 선구자는 칼 매킨타이어였다. 프린스턴에서 메이첸 박사를 따라 웨스트민스터로 옮겨와 웨스트민스트를 졸업한 칼 매킨타이어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성에 차지 않았다. 반공정신이 더 투철하고 더 투쟁적이고 더 보수적이고 더 성경적인 신학교가 필요했다. 그래서 세운 신학교가 페이스 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다.

칼 매킨타이어와 그의 동료들은 맹렬한 싸움꾼으로 한 때 미국 사회의 희망이 되었었다. 자유주의 신학과 공산주의 사상으로 힘들었던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와 미국 사회에 칼 매킨타이어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지금 한국 보수 운동 지도자보다 훨씬 건강했고, 더 큰 존경과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미국 근본주의는 경화되면서 점점 고립되고 본질을 잃기 시작했다. 현재 칼 매킨타이어가 담임했던 교회나 그가 심혈을 기울여 세웠던 신학교가 사라지고 말았다. “근본주의”의 원래 의미는 신앙의 근본인 성경을 지킨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화된 근본주의는 폐쇄주의. 분리주의, 반지성주의의 양상을 띠게 되었고 현재는 아무런 흔적도 없는 상태다.

한국도 칼 메킨타이어 영향을 받았다. 한국 총신대학교 사당동 캠퍼스를 준비할 때 큰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 바로 칼 매킨타이어 박사다. 그는 합동측 탄생과 총신대학 설립에 큰 도움을 주었고, 한국의 보수교단 출범을 도왔던 인물이다. 필자가 총신대 신대원에 재학할 때인 1987년에도 그는 총신대 신대원 채플에서 설교하며 보수신학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칼 매킨타이어가 근본주의 신학을 주창하던 시기에 비슷한 신학 노선의 사람들이 신복음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기본적인 신학 노선은 근본주의와 별 다를 바 없었지만, 합리적 지성주의 신학운동과 더불어 싸우는 연대를 지향했다. 그들은 빌리 그레이엄(부흥사), 헤롤드 오켄가(풀러 신학교 초대 총장), 그리고 칼 헨리(기독언론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설립 및 초대 편집장)이다. 이들이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운동을 견고히 세웠다.

미국의 근본주의는 싸우다 망했다. 필자는 20대 후반 스스로 근본주의자라고 소개하곤 했다. 근본주의 신학 사상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들의 분리주의와 투쟁주의가 패착이 되어 망해버린 사실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미국의 신복음주의는 싸우는 대신 복음으로 설득했다. 신복음주의자들이 일궈낸 연대와 연합의 모델은 현재 한국교회가 꼭 배워야 할 것이다. 신복음주의 운동이 지킨 미국 교회가 오늘날 미국을 지키고 있다.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대표).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