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크리스토퍼 베넥 목사의 기고글인 '교황의 AI 회칙, 왜 지역 교회에는 충분하지 않은가'(Why the Pope's new AI encyclical isn't enough for local churches)를 5월 25일 게재했다.
크리스토퍼 베넥 목사는 신기술과 신학 분야의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다. 현재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위치한 퍼스트 마이애미 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The CoCreators Network의 CEO이자 인공지능(AI) 분야의 대표적 성직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그는 크리스천 트랜스휴머니스트 협회의 창립 의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인공지능(AI)에 관한 레오 교황의 새로운 회칙(encyclical)을 알리는 헤드라인을 읽으며, 마침내 교회가 AI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고 안도할지도 모른다.
이 문서가 희망적인지 혹은 조심스러운지, 미래지향적인지 아니면 절제되어 있는지에 대한 요약과 논평, 논쟁과 예측이 뒤따를 것이다. 어떤 이들은 교회가 기술적 미래를 향해 자신감 있게 나아간다고 환호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교회가 충분히 나아가지 못했다고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논의의 이면에는 훨씬 더 까다로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심오하고 중요한 회칙이라 할지라도, 단일 문서 하나만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과 지역 사회, 그리고 문화에 이미 미치고 있는 영향력에 교회가 충분히 대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존엄성, 진리, 노동, 정체성, 권위, 그리고 권력의 윤리적 사용을 둘러싼 질문들은 모두 인공지능의 부상과 깊이 얽혀 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비단 로마 교황청이나 기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AI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관계를 맺고 일하며 학습하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을 재편함에 따라, 모든 주요 종교의 전통과 지역 신앙 공동체가 갈수록 더 많이 직면하게 될 질문들이다. 교황과 같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포괄적인 신학적 원칙을 공유할 수는 있겠지만, 신앙 안에서 AI를 다루는 윤리적 실천은 언제나 지역 사회의 삶의 현실, 경제적 압박, 문화적 역학, 관계의 패턴, 그리고 특정한 목회적 필요를 통해 '현장(locally)'에서 다듬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론이 아닌 목회의 문제
이 지역적(local) 차원이 중요한 이유는, AI가 평범한 회중들의 삶 밖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정책 문제나 추상적인 윤리 논쟁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AI는 이미 예배당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매일의 삶을 형성하고 있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는지, 어떻게 소통하는지, 어디서 정보를 얻는지, 어떻게 의견을 형성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욕망하는지, 심지어 정서적 혹은 영적인 지도를 받기 위해 어디로 향하는지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도전은 더 이상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극히 목회적인 문제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작업은 교단의 공식 성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일은 지역 교회 안에서 일어날 것이다. AI의 실제적인 영향력은 철저하게 상황적(contextual)이기 때문이다. 기술 기업 임원, 스타트업 문화, 이민자의 현실, 다국어 목회, 디지털 창업 생태계 속에서 씨름하는 마이애미의 한 교회는 경제적 소외, 인구 고령화, 교육 접근성 문제에 주로 직면한 농촌 교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AI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AI가 도입된 전문직 업무를 수행하는 부유한 도시 중심의 교회는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는 노동자 계층 중심의 교회와는 다른 질문에 직면한다. 디지털 원주민인 젊은 세대를 섬기는 교회가 겪는 도전은, 이러한 도구를 처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는 노년층 중심의 교회가 겪는 도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하향식(top-down) 선언이 비록 중요할지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충분할 수 없는 이유다. 선언문은 원칙을 세울 수는 있지만, 특정 공동체 안에서 펼쳐지는 삶의 현실, 문화적 차이, 경제적 압박, 목회적 복잡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 실제적인 분별은 관계적이고 상황적으로, 그리고 지역 목회 자체의 리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목회자, 사제, 교육자, 부모, 청년 리더, 그리고 평신도 공동체가 사람들이 기술이 단순히 '기능적'인 것을 넘어 깊이 '형성적(formative)'으로 작용하는 세상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점점 더 도와야 함을 의미한다. 교회는 그 어떤 문서나 중앙집중적인 성명서도 단독으로 포괄적인 해답을 줄 수 없는 질문들과 실질적으로 씨름해야 할 것이다. AI를 둘러싼 현실이 각 공동체마다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다국어를 사용하는 이민자 교회가 AI 번역 도구에 접근하는 방식은 행정적 효율성을 위해 AI를 사용하는 교외 지역 교회의 방식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를 위협받는 지역 사회의 교회는,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스타트업 창업자들로 가득한 교회와 노동, 소명, 경제적 존엄성에 대해 어떻게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가?
◆알고리즘이 큐레이션 한 소셜 미디어에 푹 빠져 자라는 십 대들을 위한 신실한 디지털 제자도는, 이제 막 AI 지원 기술을 다루기 시작한 노년층을 위한 그것과 어떻게 다른 모습이어야 하는가?
◆외로움, 불신, 또는 기술적 의존성이 이미 공동체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목회자는 어떻게 진정한 목회적 돌봄과 임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책임감 있게 AI를 사역에 사용할 수 있는가?
◆편리함, 속도, 개인화에 점점 더 지배당하는 문화 속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어떻게 진정한 인간적 임재와 직접 마주하는 관계를 보존할 수 있는가?
이는 단순한 기술적 질문이 아니다. 이것은 '제자도'의 질문이다.
다양성을 품는 교회의 고유한 강점
사실, 지역 교회야말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기술 시스템이 종종 획일화하거나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인간의 다양성을 하나로 모으는 곳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교회는 세대, 경제적 계층, 교육적 배경, 민족, 문화, 정치적 성향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하나의 공유된 공동체로 모은다.
많은 교회에서 이민자들은 평생의 토박이 시민과 나란히 앉아 예배하고, 엔지니어는 노동자와, 청년은 은퇴자와, 부유한 전문직 종사자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이것은 교회의 증거에 있어 약점이 아니다. 교회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다. AI 시스템은 종종 동일성, 예측 가능성, 세분화를 향해 최적화되지만, 교회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때 사람들이 일상적이라면 굳이 선택하지 않았을 타인들과 강제로라도 관계를 맺게 만들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이것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단순한 가짜 뉴스의 확산이나 자동화가 아니라, 관계적, 도덕적, 영적 형성 과정이 조용히 침식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점점 더 인간은 효율성, 예측, 최적화, 그리고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이와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 데이터의 단위나 측정 가능한 산출물로 축소될 수 없는 인내, 지혜, 겸손, 용서, 진실함, 직접 마주하는 인격적 임재,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계속해서 가르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필자가 《교회 지도자를 위한 인공지능 가이드(Church Leader's Guide to Artificial Intelligence)》를 쓴 이유 중 하나는, 목회자들이 더 이상 이러한 문제들을 사역의 변두리로 밀어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 지도자들 앞에 놓인 과제는 기술적 숙달이 아니라 목회적 분별력이다. 회중에게 필요한 것은 머신러닝 모델을 코딩할 줄 아는 목회자가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이 갈수록 많은 것을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신학적으로 생각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영적 리더다.
궁극적으로, 교회 앞에 놓인 도전은 사람의 내면과 영성을 '형성(formative)'하는 일이다. 질문은 더 이상 'AI가 교회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짜 질문은 급변하는 이 세상 속에서 '교회 스스로가 지혜롭고 긍휼이 많으며 분별력 있고 깊이 있게 인간적인 사람들을 길러내는 장소가 될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교황의 회칙이 궁극적으로 아무리 위대한 의미를 지니게 될지라도 결코 그것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가장 명확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