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노트 | 크리스틴 송 칭의와 성화의 예술적 구현: Remnant
칭의와 성화의 관계는 단순한 교리적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삶과 예술적 표현 속에서도 드러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이 바로 *Remnant(남은 자)*이다.
'Remnant'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남겨 두신 자들을 가리킨다. 이 작품은 그 개념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작업으로, 특히 '뒤집힘(upside down)'이라는 구조를 통해 신앙 안에 존재하는 역설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품의 형태는 아래에서 위로 뒤집히며 꽃이 피어나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순종해 가는 과정이 이 안에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뒤집힘은 무너짐이나 상실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작품 안에서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생명과 확장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낮아짐은 끝이 아니라 은혜가 드러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뒤집힘'은 인간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변화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은혜가 삶 속에 드러나는 순간에 가깝다. 이는 칭의가 인간의 공로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선언과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점과도 맞닿아 있다.
동시에 작품은 성화의 흐름 또한 담아내고 있다. 인간이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미 허락된 은혜는 삶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작품 속 점진적으로 펼쳐지는 형상은 이러한 성장과 변화의 시간을 보여준다.
작품을 지탱하는 받침 구조는 '반석(rock)'을 떠올리게 한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기초처럼, 작품 전체를 붙들고 있는 기반의 역할을 한다. 여기에 의상 디자인에서 사용되는 허리 벨트의 형태를 더하였고, 동시에 투명한 클리어 글로시 glaze를 사용하여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또 하나의 벨트를 표현하였다.
이 보이지 않는 벨트는 인간의 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존재를 붙들고 지탱하는 은혜와 진리를 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이전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가 인간의 삶을 붙들고 있다는 의미와도 연결된다. 다시 말해 신자의 삶은 눈에 보이는 노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붙들리고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또한 작품의 밑면과 반석의 윗면이 맞닿는 부분에는 나이테를 연상시키는 음각 무늬를 새겨 넣었다. 이는 성화가 단번에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이루어져 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나이테는 시간의 축적과 성장의 흔적을 품고 있으며, 눈에 선명히 드러나지 않더라도 조용히 쌓여 가는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나이테의 구조는 매 순간 비슷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층이 더해진다. 이는 신자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순종의 경험이 반복적으로 쌓이며 점차 깊어져 가는 성화의 흐름과 닮아 있다.
작품의 뒷면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지퍼(zipper)' 형상을 화석(fossil)처럼 삽입하였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과 기억, 그리고 연결의 의미를 담고 있는 요소이다. 이를 통해 약 2,000년 전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은혜의 시간이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개념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화석처럼 남겨진 지퍼의 형상은 과거의 사건이 단순히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현재 안에서 영향을 미치며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암시한다. 동시에 지퍼는 서로 분리된 것을 연결하는 구조를 가진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이 십자가를 통해 다시 이어졌다는 의미로도 확장될 수 있다.
특히 작품 표면에 남겨진 거친 질감과 자연스러운 흔적들은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과 시간의 흐름을 떠올리게 한다. 성화는 단번에 완성되는 변화가 아니라 반복적인 실패와 회복, 기다림 속에서 서서히 이루어진다. 작품에 남겨진 흔적들은 인간의 연약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도 계속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낸다.
또한 작품 하단의 닫혀 있는 구조와 상단의 열려 있는 형상 사이의 대비 역시 중요한 흐름 가운데 놓여 있다. 아래쪽의 무게감 있는 형태는 인간의 제한된 상태와 현실을 보여주는 반면, 위로 열려 있는 유기적 형상은 은혜 안에서 확장되는 생명과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는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나 아직 완전한 거룩에 이르지 못한 상태'라는 칭의와 성화 사이의 긴장과도 연결된다.
결국 Remnant는 '이미 이루어진 은혜'와 '삶 속에서 드러나는 변화의 과정'을 조형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의 작업 속에는 피라미드 형태, 스크래치, 지퍼처럼 굳어진 화석의 형상, 그리고 십자가 투조 문양과 같은 반복적인 조형 언어가 등장해 왔다.
입술 옆에 위치한 두 개의 원형 구조는 귀를 연상시키는 링의 형태로 표현되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내면의 의지와 소망을 담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이러한 조형 언어를 통해 말씀을 형상으로 풀어내고, 형태를 통해 신앙을 사유할 수 있는 시각적 언어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