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오래 전, 동해 속초에 있는 한 군부대에서 속초 지역의 목회자들이 모인 상태에서 설교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다. 오전 강의를 마친 후 해변에서 목회자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목사님이 프랑스 다녀온 얘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비싼 닭고기 요리가 얼마짜린지 아냐고? 답을 말하는데 모두 깜짝 놀랐다. 한 끼에 '2천만 원"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2] 내가 물었다. 닭 한 마리가 아무리 좋은 품종이라 해도 10만 원을 넘어가지 못할 텐데, 어째서 2천만 원짜리 닭고기 요리가 있느냐고 말이다. 그분이 대답했다. 닭 한 마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요리에 붓는 와인이 얼마짜리인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그때 퍼뜩 떠오른 성경 구절이 있었다. 바로 고린도후서 4장 7절이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3] 맞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속에 누가 계시는가에 달려 있다. 내 영혼의 가치는 내가 무엇을 이루었느냐에 있지 않다. 내가 얼마나 많이 배웠느냐에 있지 않다. 내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있지 않다. 내가 얼마나 선하냐에도 있지 않다.
닭고기 한 접시가 2천만 원의 가치가 있는 것은 닭고기 자체가 아닌 수십 년 묵은 최고급 와인이 첨가되었다는 사실에 있음을 보았다.
[4]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 살아계시느냐에 우리의 참 가치가 달려 있다.
은도 아니요, 금도 아니요, 학벌도 아니요 외모도 아닌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대가"에 우리의 진가가 매겨진다.
때문에 우리의 가치는 세상 돈이나 어떤 가치로도 측정할 수 없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Priceless”, 즉 “값을 매길 수 없는” 존재이다.
[5]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우리를 그런 존재로 만들기 위해 모질게 짓밟히고 조롱당하고 죽임당하는 수모와 고통을 감내하셨다. 그럴 만큼 우리의 영혼은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이 진리는 양면성이 있다. 만일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피 값이라면, 그 영혼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란 점이다. 죄와 안락함, 그리고 이 세상의 사라질 것들과 바꾸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실례요 비극이 된다.
[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러나 복음의 소망이 여기 있다. 그 값은 이미 지불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그 가치를 이미 증명해 주신 분을 받아들이고 주인으로 모시면 된다.
아무런 재주나 재물이나 능력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다른 이와 비교해서 주눅들거나 패배의식에 사로잡히지 말라.
[7]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그 자체만 해도 당신은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다. 당신은 천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중 한 분이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신 소중한 존재이다.
더는 낙심하거나 절망에 빠지거나 불평과 죄책감 속에 시달리지 말라. 그것은 당신을 위해 갖은 수모를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8] 세상 사람들은 ‘지위, 부, 아름다움, 성공, 학벌’ 등으로 가치를 판단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게 평가하신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이 이렇게 말했다. “The worth of a soul is measured by the price paid for it-Christ’s blood.”(한 영혼의 가치는 그것을 위해 치러진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가로 측정된다).
이게 바로 우리의 참 가치와 정체성이요, 진정한 자아상임을 믿고 오늘 하루도 자부심을 가지고 멋지고 당당하게 잘 살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