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일
(Photo : ) 이성일 목사(온타리오 연합감리교회)

며칠 전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A'라는 분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인은 그분을 '푼수' 같다며 웃었고, 저는 그분을 '순수'한 사람이라며 미소 지었습니다.

한 사람을 두고 '푼수'와 '순수'라는 상반된 단어가 오갔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두 마음 모두 A라는 사람을 향한 각자의 애정 섞인 관찰이었습니다.

나눌 분(分)에 수 수(數)를 쓰는 '푼수'는 본래 '사람의 됨됨이나 정도'를 뜻합니다. 지인이 그를 푼수라 부른 건, 아마도 사회적 계산이나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때론 허물없이 다가오는 그의 서툰 다정함이 눈에 띄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세상에서 조금은 헐겁게 마음을 내보이는 모습이, 지인에게는 '조금 더 영리하게 자신을 챙겼으면' 하는 안타까움 섞인 시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저는 그의 모습에서 실사 순(純)과 쌀 찧을 수(粹)의 의미를 보았습니다. 다른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본연의 상태. 세상이 정해놓은 복잡한 공식대로 움직이지 않고,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투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그 모습이 참 귀해 보였습니다.

누군가를 '푼수'로 보는 것은 이 험한 세상을 조금 더 지혜롭고 안전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현실적인 마음일 것이고, 누군가를 '순수'로 보는 것은 사람 본연의 맑음을 지켜주고 싶은 이상적인 마음일 것입니다.

결국 푼수와 순수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세상의 기준이라는 창으로 보면 '푼수'가 되어 걱정을 자아내고, 마음의 본질이라는 창으로 보면 '순수'가 되어 감동을 줍니다.

지인과 저의 대화는 결국 한 사람의 인간미를 두고 서로 다른 이름표를 붙여준 것뿐이었습니다. "참 계산 없어서 푼수 같아"라는 지인의 말과 "참 꾸밈없어서 순수해"라는 제 말은, 결국 그분의 '진심'을 읽어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