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Photo : )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1]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주목을 끌 것인가에 관심이 아주 많다. 최근 대한민국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링 저자로 급부상한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자청’이다. 그가 쓴 『역행자』는 약 7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최근 출간된 『완벽한 원시인』 또한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쓴 『초사고 글쓰기』는 52억 판매량을 자랑한다. 가히 이 시대 최고의 작가라 할 수 있다.

[2]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나는 자청의 『초사고 글쓰기』가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의 강의도 듣고 책도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한마디로 하면, 그의 책은 “어떻게 하면 사람을 설득하고, 영향력을 갖고,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말한다.
글을 쓰고 설교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어째서 그의 책들이 베스트셀링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한눈에 알게 되었다.

[3] 글을 쓰거나 설교문을 작성하는 이들이 배워야 할 점이 적지 않았다. 그의 『초사고 글쓰기』의 핵심은 “독자가 원하는 것을 써라!”이다.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글을 쓰는 건 비판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수준 높고 좋은 글을 써도 독자의 주목을 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양질의 책들이 즐비하지만 읽히지 않는 책들이 너무 많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4] 자청은 글을 감각이 아니라 ‘구조’로 본다. ‘글의 구조’와 ‘전달력’과 ‘설득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문제 제기-공감-해결책-근거-
행동 유도’와 같은 프레임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글을 쓰거나 설교문을 작성하는 이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좋은 글은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 아니고 ‘잘 짜인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5] 또 그는 ‘짧고 쉽고 강한 문장을 사용하라’고 한다. “요즘 시대는 ‘읽는 글’이 아니라 ‘스캔하는 글’이라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길고 장황하고 어려운 글을 좋아할 독자는 없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문장 자체가 짧고 쉽고 명쾌해야 한다.
그가 제시한 글쓰기 비법 중 가장 강력한 장점이 하나가 눈에 띈다. 그것은 ‘자기 경험을 설득의 최강력 근거로 제시하라’는 점이다. 그렇다.

[6] 설명 위주의 글만으로는 독자의 관심을 끌 수가 없다. 설교 역시 설교자 자신이 경험한 예화를 사용할 때 청중의 집중도가 가장 커진다.
독자나 청중의 공감을 얻는 글이나 설교를 무시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의 설교는 진리를 말하되 언제나 청중들의 상황에서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그 일을 위해 많은 예화(비유)를 사용하셨다.

[7]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언어나 예화로 글을 쓰거나 설교문을 작성하는 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신다.
그런 점에서 자청이 집필한 『초사고 글쓰기』는 글을 쓰거나 설교문을 작성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책이 많이 팔려 수익도 올리고, 독자들에게 흥미도 끌고 유익을 주는 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8] 하지만 자청의 주장 내용이 다분히 ‘독자 중심’과 ‘성과 중심’의 발상이라는 점은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글이 실용적이긴 하나, ‘학문적 깊이가 떨어진다’라는 치명적 결함이 있음을 숨길 수 없다.
글이나 설교가 독자나 청중의 공감을 얻어야 하는 건 사실이나, 거기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9] 첫째, 진리가 왜곡될 위험이 있다. 독자의 공감과 반응을 우선하다 보면, 불편한 진리나 듣기 싫은 메시지는 점점 배제되기 쉽다. 결국 글은 진리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둘째, 내용보다 형식이 앞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구조와 전달력, 설득 전략이 강조될수록 ‘글의 깊이나 본질’보다 ‘어떻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해질 위험이 있다.

[10] 그 결과, 잘 포장된 글은 많아지지만, 깊이 있는 글은 줄어들게 된다.
셋째, 성과 중심 사고가 글의 목적을 왜곡시킨다. '조회수, 판매량, 반응'이 글의 기준이 되면, 글쓰기의 본질인 ‘진실 전달’과 ‘의미 있는 사유’는 점점 약화된다. 특히 설교의 경우,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청중의 반응을 우선하는 위험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11] 글도 그렇지만, 설교는 청중의 호감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진리를 전달하기 위한 통로가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글이나 설교문은 ‘쉽고 간결하고 재미있고 감동도 있고, 의미도 심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