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을 앞두고 한영숙 목사가 고(故) 김종환 목사의 생전 설교를 전해왔다. 한영숙 목사는 현재 바울세계선교회를 이끌며 고 김종환 목사가 남긴 설교와 기도문, 문학 작품 등을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삼일절 설교에서 김 목사는 삼일절 정신을 단순한 저항의 역사로 보지 않고, 전도서의 말씀처럼 “창조주를 기억하는 믿음” 위에 선 역사적 책임의식으로 해석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진리 앞에 자신을 던졌던 그 기백이 곧 십자가 정신이라며, 민족의 역사 역시 성경적 진리 위에 설 때 비로소 새로워질 수 있다고 권면했다.

고 해봉 김종환 목사는 한영숙 목사의 남편이자 평생 사역 동역자로, 1980년 도미 후 KPCA 뉴욕노회에서 안수받고 1982년 고려교회(현 메트로폴리탄연합감리교회)를 공동 창립했으며, 바울세계선교회를 설립하고 『신앙과 교회』를 발행하며 이민교회 신학의 지평을 넓힌 목회자다. 해당 설교는 2002년 3월3일 당시 고려교회 삼일절예배에서 전했다. 다음은 설교문 전문.

 삼일절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나옵니다. 삼일절의 정신이 없이는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삼일절 정신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삼일절 정신을 집권 세력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이해한다면 삼일절 정신이 대한민국의 근간이 될 수는 없습니다. 권력에 대한 저항을 부추기는 국가는 존립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려 교회는 창립 때부터 삼일절 기념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민족사에서 보는 신앙인의 사명을 선포했고, 세계문화를 향한 겨레의 위대성을 말씀으로 증거 했습니다. 오늘은 히브리 인들의 역사 속에서 최고 정상의 엘리트였던 전도서 저자의 시간관 과 역사관을 복음으로 읽는 지혜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전도자의 말씀은, 시간은 사정없이 냉혹하게 흐르고 있으니 너의 수족이 움직일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창조주는 사랑으로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믿음과 사랑으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지으실 때에 남자의 갈비뼈로 지으셨다는 말씀이 그 좋은 예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할 때에는 갈비뼈에 손을 대고 다짐하는 말을 했습니다.

 흔히들 역사를 논할 때면 제왕이나 위대한 인물들의 업적을 말합니다. 그러나 인류역사의 실상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눈물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역사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고대 이집트로부터 클레오파트라에 이르기까지 4천년의 시간을 장식했던 나일 강의 역사는 미라와 피라미드로 대변되는 화려한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제왕들과 당대의 부자들을 위한 궁전과 도시를 건설하는 일이나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위하여 동원된 수많은 이름 없는 노예와 백성들이 나일 강의 물줄기를 따라 거대한 돌들을 운반하고 다듬고 세우는데 피땀을 흘리고 죽어갔습니다. 피라미드에는 남편과 자식을 강제 노역에 내어보내는 여인들이 부르짖은 통곡의 눈물이 스며있습니다.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죽음 이후에 태양신의 도움으로 언젠가 부활하게 될 날을 대비해서 미라가 되어 준비할 수 있었지만 수많은 이름 없는 백성들은 노역에 시달리며 사막의 모래 바람 속에서 통곡의 눈물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고 김종환 목사가 고려교회 협동목사로 사역하던 당시 사진
(Photo : 한영숙 목사 제공) 고 김종환 목사가 고려교회 협동목사로 사역하던 당시 사진

인다스강 3천년의 문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들은 죽음을 넘어선 해탈의 세계, 즉 브라만의 세계를 꿈꾸며, 어떤 것도 영원한 세계에 가져갈 수 없고 장애가 된다는 종교의 가르침 아래 시신을 철저하게 화장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족한 삶과 장례는 제왕이나 집권층, 부자들과 같은 한정된 계급에게만 허용된 것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장작을 살 돈이 없어 제대로 화장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모르게 시신을 떠나보내며 비통한 슬픔을 숨겨야 했던 서민들의 한을 빼면 남는 것이 없는 허무한 인다스강의 문명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황실에서 미용제로 썼던 살구나무 꽃도, 메뚜기로 칼슘을 보급하는 건강을 위한 지혜도, 정력을 위해 강장제로 사용했던 딸기도, 나이 앞에서는 모두 효력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시간이 가면 모래바람 속의 나일 강과 같이 사라집니다. 모든 사람들은 정든 세상, 슬픈 세상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을 향해 시간을 타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그런대로 무난하게 산다.”고 마음 놓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순간도 시간은 우리들을 냉정하게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습니다. “공수래 공수거”라는 불교의 가르침이나, “수의에는 주머니가 필요 없다”는 서양 속담이 뜻하는 바처럼 세상 모든 것의 결론은 허무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한강의 역사 역시 눈물과 통곡으로 채워진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기백을 이루는 삼일절의 정신은 우리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었습니다. 그것은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행동으로 보여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과 자유의 정신입니다. 당시 젊은이들의 기백은 자신의 이름을 날리는 것이나, 권력이나 부를 치부하고 살아남는 것과는 관계가 없이, 믿음으로 자신을 진리 앞에 던질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체험 되어 세상의 슬픔과 한을 넘어서는 새로운 역사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든 것을 지으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진리에 참여하는 사랑이 없으면 세상의 한계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믿음이 없으면 사랑 자체에 책임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사랑은 관계성에서 최선의 신뢰이고, 사랑에는 역사 속에 약속되어 있는 것을 감사하며 지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슬픔도 허무도 있을 수 없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가르침은 때를 놓치지 말고 진리를 향하여 자기 자신을 던지는 젊음의 기백으로 역사 앞에 책임을 지고 사랑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입니다. 이것이 삼일절의 정신이고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을 살아가는 고달픈 이민의 삶 속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삼일절의 맥을 이어가게 하시는 것은 오늘의 당면한 역사를 책임지라는 명령이며 축복입니다. 흔히들 “삼일절 민족정신으로 남북통일 이루자”는 말을 하지만 진리를 향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처절하고 허무한 것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때에만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날을 체험하게 되고 세상의 허무한 시간과 압제의 고통을 넘어서는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한국인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