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존 가마데스의 기고글인 '직장에서의 신앙에 대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질문 하나'(When 2026 is uncertain, remember that God is not)를 최근 게재했다.
존 가마데스(John Gamades)는 OrangeBall Creative의 사업가이자 리더, 저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CBMC 신뢰받는 자문가 포럼(Trusted Advisor Forum) 회원으로서 자신의 신앙 성숙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리더들이 정직과 진실성을 가지고 성장하도록 돕는 데 헌신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가끔은 우리를 조금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속도를 늦추고,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 말이다. 지금 던지려는 질문이 바로 그런 질문이다.
만약 어떤 고객이나 동료가 당신의 일터에서의 삶만을 관찰한다면 당신의 결정, 인간관계, 압박 속에서의 태도까지 그들은 당신이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영역은 완전히 보이지 않을까? 당신은 자신의 믿음을 담대하게 드러내는 편인가, 아니면 숨겨두는 편인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주제가 얼마나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괜히 성경 들고 다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잖아?" 또 동시에, "내 기독교 신앙은 주일에만 지키는 게 맞지, 평일 한가운데까지 끌어들이는 건 아닌 것 같아."
필자 역시 오랜 시간 이 씨름 속에 있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과, 직장 문화 안에서 '안전하고 받아들여질 만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왔다.
그 결과, 오랜 기간 동안 필자의 일터에는 신앙의 증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만약 법정에 섰다면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는 받았겠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판결을 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일터에 신앙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우리가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드러나는 증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이 그들을 알아보는 방식이 신앙을 얼마나 크게 외치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서로 사랑하는 방식이 그 증거가 된다고 하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
우리가 신앙에 대해 말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의 행동은 이미 신앙을 말하고 있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압박 속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에 신앙이 드러난다. 우리를 힘들게 하거나,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우리의 '일' 자체가 예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로새서 3:23)
정직함과 겸손함, 그리고 탁월함으로 일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본다. 당장 그것을 신앙과 연결 짓지는 않더라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다름이 훗날 더 깊은 대화로 이어지는 문이 된다. 필자의 친구 돈 호퍼트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우리는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말하는 방식에 드러나는 증거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의해 뒷받침되거나, 혹은 무너진다. 야고보는 혀의 힘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 "혀는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야고보서 3:5)
스트레스 속에서, 갈등 가운데서, 혹은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쉽게 비판하고, 불평하고, 험담하는가? 아니면 상황이 어려울수록 인내와 절제, 은혜가 담긴 말을 선택하는가? 바울은 우리의 말에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골로새서 4:6)
이는 진리를 피하라는 뜻도, 늘 눈치만 보라는 뜻도 아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 걸맞게 신중하고 절제된 말을 하라는 뜻이다. 때로는 주변 대화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것이 더 쉬운 길이지만, 그 유혹을 거부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입으로 말할 용기가 있을 때 드러나는 증거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다르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문이 열리고, 그때는 믿음을 분명히 말로 표현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 신앙이 개인적이고 숨겨진 신념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하리라" (마태복음 10:32)
이 말은 회의를 설교로 만들라는 뜻도, 모든 대화에 억지로 신앙을 끼워 넣으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적절한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의 관점을 형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으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 써 내려가신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을 들어야 할 누군가와 나누라는 뜻이다.
그 모습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동료에게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신앙이 어떤 기준이 되는지 설명하는 것, 혹은 누군가가 희망의 이유를 물을 때 자신의 간증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의 믿음이 한 번도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존중할 수는 있어도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는지는 결코 알 수 없다.
더 나은 길
우리 대부분은 이 긴장을 느낀다. 신앙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숨기고 싶지도 않다. 해답은 더 시끄럽게, 더 공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 용기 있고, 더 진실해지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 균형을 이렇게 표현한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 (베드로전서 3:15)
온유와 존중은 메시지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메시지를 강화한다. 많은 이들에게 직장은 하나님이 맡기신 가장 중요한 선교지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교회에는 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당신의 삶은 매일 가까이서 보고 있다.
2026년을 향한 도전
만약 올해가, 사랑에 뿌리내린 방식으로 조금 더 의도적이고 담대하게 신앙을 드러내는 해가 된다면 어떨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증거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진다면, 그 답이 우리의 일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그리고 매일의 신앙 고백 속에서 발견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도록, 분명한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