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5년 보수주의 기독교가 자유주의 사상과 충돌했다. 자유주의 신학에 보수 복음주의가 공개적으로 패배했고, 신복음주의자들이 이 패배를 곱씹으며 각성했던 해이다. 보수신앙이 지배했던 테네시주에서 소위 스코프스 원숭이 재판(Scopes Monkey Trial)이라는 세기의 재판이 열렸다.
교육이 금지된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친 임시 생물 교사 스코프스가 고발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진화론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와 진화론을 반대하는 보수주의의 충돌이었다. 이 재판에 등장한 양측 변호사들의 유명세가 재판의 열기를 더했다. 피고 측에는 클래런스 대로우(Clarence Darrow)가 검찰 측에는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가 나왔다.
재판은 라디오로 중계되었다. 재판은 윌리엄 J. 브라이언이 부흥회 하듯 정통보수신앙을 외쳤고 방청객은 아멘과 환호로 화답했다. 그런데 영민한 클래런스 대로우가 윌리엄 브라이언을 증인으로 세워,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과 일천한 과학 상식을 집요하게 공격하며 브라이언에게 모욕을 주었다. 보수신앙의 비과학성과 무지를 드러내자, 여론은 반대로 흘렀다.
재판은 피고에게 100불 벌금 부과로 끝났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보다는 이슈의 공론화를 통해 보수신앙의 논리적 모순과 비민주성을 까발리기를 목표로 했던 클래런스 대로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브라이언은 재판에 이기고도 대대적인 망신을 당했고, 재판 5일 후 석연찮은 이유로 사망했다.
이 재판은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에게 기독교가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을 부각했다. 후일에 창조과학자들이 성경의 진리가 사실이라고 증명했지만, 그 시절에는 자유주의 및 진화론자들에게 틈새를 제공했다. 생각이 많은 젊은이에게 신앙의 의문을 품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마치 전통적 기독교 신앙은 모순덩어리인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지성인과 젊은이가 교회를 떠났다.
이에 아픔을 느낀 신복음주의 지성이 각성했다. 신복음주의 운동을 이끈 해롤드 존 오켄가(Harold John Ockenga)는 1942년 미복음주의 협회(NAE)를 창설하면서 “우리 복음주의는 수십 년간 연속적으로 패배를 당해왔다.”라고 탄식했다. 이렇게 근본주의 신앙의 배타성, 분리주의와 반지성적 태도를 반성하고 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신복음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빌리 그레이엄, 해롤드 존 오켄가, 칼 헨리 등 신복음주의자들은 교회의 추락을 막기 위해 젊은이와 지성인을 설득할 수 있는 기독 지성의 양성을 위해 복음주의 신학교를 창립했다. 또 복음주의 운동은 세상을 깨우는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독 정론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를 창간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급류에 휘청거리는 현대 교회가 자유주의신학과 근본주의신학의 틈바구니에서 교회와 복음을 지켰던 신복음주의 운동을 배우면 좋겠다. 신복음주의는 복음의 합리적 변증을 통해 세상에 파고들었다. 신복음주의는 연합으로 영적 스크럼을 짰다. 그들은 세상을 깨우며, 세상이 던지는 문제에 지성적 답변을 제시했다. 그들은 세상을 깨웠다.
복음을 외면하는 현대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현대 교회의 도전이다. 현대 교회는 이런 도전을 어떤 영성과 신학으로 극복해야 할까? 신복음주의 운동 원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 신복음주의 운동의 지혜, 용기 그리고 헌신을 배우면 좋겠다. 시세를 분별했던 잇사갈 지파의 통찰력(대상 12:32)을 이 시대 교회와 목회자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