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남자가 매일 같이 이른 아침에 배낭을 짊어진 채 자전거를 타고 국경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세관원이 그 남자에게 말했다. 세관에 신고할 물품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배낭에는 뭐가 들어 있습니까?” “모래가 들어 있습니다.” 세관원이 남자의 배낭을 검사했다. 배낭에는 정말로 모래만 가득 들어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간 남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배낭을 짊어진 채 국경을 넘어서 오갔다.
세관원이 매일 같은 질문을 하지만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해서 배낭을 열어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모래를 확인한 채 그 남자를 통과시키곤 했다.
그런데 상부에서 얘기가 들려온다. 밀수꾼이 매일 밀수품을 갖고 지나간다는 첩보가 있으니 확실하게 검문해서 체포하라고 말이다. 남자가 8일째 되던 날, 그 사람이 바로 그 밀수꾼이라는 걸 확신한 세관원이 남자에게 다시 묻는다.
“배낭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이오?” “모래밖에 없습니다.” “배낭을 열어보세요!”
이번에도 배낭을 뒤져보았지만, 배낭에는 남자가 말한 대로 정말로 모래밖에 담겨 있지 않았다. 남자는 그 후로도 매일 아침이면 국경을 넘나들었다.
어느 날 궁금증에 견디다 못한 세관원이 그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이지 궁금해 미치겠소. 내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겠소. 그리고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겠소. 당신이 이겼단 말이오. 그러니 제발 좀 가르쳐주시오. 도대체 당신이 밀수하고 있는 물건이 무엇이란 말이오?”
세관원이 각서를 쓰고 나자 마침내 남자가 대답했다. “자전거요.” 매일 자전거를 밀수한 것이다.
이처럼 정작 초점 맞춰야 할 물건은 놓쳐버린 채 엉뚱한 것에 집중해서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오늘 우리에게도 참 많음을 본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실례를 꼽으라면 ‘눅 17:11~19절’을 얘기할 수 있다. 이 본문에는 예수께서 한센씨병 환자 열 명을 치유해 주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가 길을 가다가 나병에서 완치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중 한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시함으로 영적인 구원까지 받은 내용이다.
이 본문은 ‘추수감사주일’이나 ‘맥추감사주일’에 단골로 설교하는 본문이다. ‘감사가 있어야 영적인 구원까지 받을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곤 한다. 하지만 이야말로 헛다리 짚은 것이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본문의 주제를 ‘감사’라고 하는데, 본문의 정확한 주제는 감사가 아니라 ‘믿음’이다. 예수님께서 “네 ‘감사’가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감사는 ‘믿음의 결과’에 불과하다. 아홉 명도 믿음이 있었기에 제사장에게 갔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아홉 명 유대인 환자와 한 명 사마리아인 환자의 근본적인 차이는 뭘까? 아홉 명은 예수님을 ‘miracle maker’로만 믿은 사람들인 반면, 한 명은 예수님을 ‘savior’로 믿은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홉 명은 구원받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아닌 반면, 한 명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구원받는 믿음’(saving faith)을 가진 자이다.
본문의 결론이 뭔가? 19절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라”이다.
처음에 소개한 세관원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초점을 잘못 맞췄다고 했다. 이 본문을 대하는 설교자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감사’에 초점을 맞춰서 설교하고 있다.
모래가 든 배낭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신경 썼어야 할 자전거를 놓쳐버렸듯이, 감사에 주목하게 되니 정말로 소중한 핵심 주제와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19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서 “구원하였느니라”(‘σέσωκέν’)라는 동사는 ‘완료형’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그 한 명은 ‘이미 구원받은 상태’인데, 지금 여전히 ‘구원받은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구원은 이미 완료된 상태에 있으며, 아울러 그 상태가 이 감사의 사건으로 현재에도 계속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선언하신 것이다.
그렇다. 그가 참 믿음이 있었기에 비록 우선은 손해가 되고 희생되는 일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예수님께 올인할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참 믿음의 소유자라면 우리 역시 ‘행함이 있는 감사’로 ‘자신의 믿음과 구원’을 하나님과 주님께로부터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