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12·3 비상계엄사태 1년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한 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억류된 한국 국민들에 관한 질문을 받고 "처음 듣는 얘기"라며 되묻는 장면이 TV 화면에 나왔다. 외신 기자의 질문에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에게 "우리 국민이 잡혀있다는 게 맞느냐"고 확인한 건데 북한에 억류된 지 1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국민에 대해 대통령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한편으론 당황스럽다. 

이날 외신 기자회견장에서 NK뉴스 기자는 2014∼2017년에 스파이 혐의로 북한에 잡혔거나 탈북자 출신이 중국에서 활동하다 강제 북송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아주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어서 개별적 정보가 부족하다"며 즉답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NK뉴스 기자의 질문은 지난 2013~2016년 사이에 북한이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와 탈북민 3명 등 우리 국민 6명을 불법적으로 체포·억류하고 있는 사실에 관해 대통령의 입장을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답변 태도로 보아 이런 기본적인 사실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김정욱 선교사 등 우리 국민을 북한이 억류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일이다. 하지만 오래된 일이라 정보가 부족하다는 대통령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곤란하다. 이 대통령이 뒷자리에 배석한 위 안보실장에게 "처음 듣는 얘기다. 무슨 일로 억류됐냐"고 물은 것만 봐도 오래 되서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아예 사실 파악이 전혀 안 돼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튀르키예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기자들에게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를 꺼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비전향장기수는 42년 수감 생활을 하고 1995년 출소 후 자유의 몸이 된 안학섭를 말한다. 기자들에게 "90세가 넘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이들이 자기 고향 북한으로 가겠다는 것을 뭐 하러 막겠느냐"며 그를 북한으로 송환할 의사가 있음을 직접 밝힌 거다. 

이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비전향 장기수 송환 문제를 언급한 건 현 정부가 구상하는 남북관계 개선책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간첩죄로 처벌을 받고 끝까지 전향을 하지 않은 공산주의자를 원하는 대로 북한에 돌려보낼 뜻을 밝히면서 북한이 강제 억류하고 있는 우리 국민 6명에 대해선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다. 이 대통령에게 질문한 외신 기자가 도리어 당황스러워 할 정도였으면 그 장면을 지켜본 우리 국민, 특히 북한 억류자가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가족들의 심경은 오죽했겠나. 

북에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의 형 정삼 씨는 이날 모 TV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처음에는 몰랐다 하더라도 자국민이 억류돼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반응을 보며 실망뿐 아니라, 그보다 더 한 아픔을 느꼈다"라고 했다. 최춘길 선교사의 아들 진영 씨도 " 북한에 억류된 세 명의 선교사 이야기를 (이 대통령이) 처음 들었다고 했을 때, 깊은 절망과 무력감, 분노, 불신을 느꼈다"라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마 다른 납북자 가족들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기자에게 "아주 오래전 벌어진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며 위 안보실장에게 관련 사안을 미루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큰 문제지만 그런 중대한 사안을 처음 인지하고 난 후의 태도 또한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여태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건 대통령실 안보라인의 책임이 크다. 아무리 조기 대선을 통해 대통령에 취임하느라 정책적인 뒷받침이 소홀했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기본 소임, 그것도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생사와 관련한 문제를 대통령이 아예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에 억류중인 자국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 본국을 데려왔다. 하지만 김 선교사 등은 역대 정부의 무관심과 송환 노력 부족으로 1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세 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을 가지고도 이 문제를 꺼내지도 못했다는 건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위정자의 기본 소임을 내팽개친 것이다. 

이 시점에서 드는 안타까운 생각이 있다. 북한 억류 선교사를 잊지 말자며 '물망초'란 이름의 민간단체 회원들과 그 가족이 외치는 절규를 한국교회가 좀 더 귀 담아 들었더라면,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신분으로 한교총과 NCCK등 교계 기관을 방문했을 때 누군가는 이 문제를 거론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이 대통령이 최소한 "처음 듣는 얘기"라고는 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 한국교회 주요 교단의 외면과 침묵이 참담한 상황에 이르게 한 요인이라고 본다. 

35일간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4년 석방된 케네스 배 선교사는 억류 기간 내내 생면부지의 시민들로부터 '당신을 위해 기도한다'는 편지를 열어보며 석방의 희망,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노력해 준 덕분이라고 했다. 

중요한 건 법적·외교적 절차를 통한 해법을 찾는 동시에 그들이 잊히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을 지속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그들을 안전하게 송환하는 게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는 것을 우리 모두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