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퀸즈장로교회 김성국 담임목사의 천국환송예배가 10월 31일 오후 7시 퀸즈장로교회 예배당에서 드려졌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지 오래되지 않아 지난 10월 27일, 향년 68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김 목사의 소천은 뉴욕과 미주 교계에 한층 깊은 슬픔을 안겼다. 이날 예배에는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총회 관계자와 뉴욕노회 목회자, 교계 인사, 퀸즈장로교회 성도들이 대거 참여해 고인을 추모하고 그의 헌신을 기억했다.
예배는 김만중 목사(뉴욕노회 서기)의 인도로 드려졌고, 최해근 목사(부총회장)가 대표기도를 드리며 “사랑하는 종을 먼저 보내는 슬픔 속에서도 주의 섭리를 믿는다.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평강으로 채워 주시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이날 소개된 고인의 약력은 유난히 특별했다. “1957년 10월 11일 태어나 2025년 10월 27일 주님의 품에 안겼다”는 간결한 소개 뒤에는, 세상에서의 이력을 일절 나열하지 않고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는 단 한 문장만 안내됐다. 그 문장은 김 목사의 삶을 가장 잘 대변하는 신앙의 고백이자, 그가 남긴 마지막 설교처럼 회중의 마음을 울렸다.
설교는 한일철 총회장이 맡아 디모데후서 4장 6~8절 말씀으로 ‘신앙의 완주, 그가 받을 상급’이라는 제목으로 전했다. 한 목사는 “김성국 목사님은 사도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지킨 분이다. 그의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복된 마침이며 하나님께서 의의 면류관으로 영접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김 목사님은 교회와 총회, 신학교, 신문사까지 복음의 모든 영역을 열정으로 섬겼다. 아시아 선교대회에서 통역자를 곁에 두고 목이 터져라 복음을 외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그의 이름은 열정이었다”고 회고했다.
한 목사는 또 “암투병 중에도 ‘한 번이라도 주님을 증거하고 싶다’며 강단을 지키셨다. 자신의 몸보다 교회를 먼저 생각했고, 주의 일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신앙의 경주를 완주한 시대의 종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찬양대가 고인의 생전 설교를 모티프로 한 조가(弔歌) ‘물이 솟는 교회’를 불렀다. 김 목사가 늘 강조하던 “성령의 생수가 흐르는 교회”라는 고백이 찬양 속에 울려 퍼지자 회중은 눈시울을 붉혔다.
또 영어·러시아·중국어권 목회자들이 차례로 추도사를 전하며,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이 함께 예배하는 교회가 김성국 목사님의 비전이었다”며 “그 비전이 퀸즈장로교회를 통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장남 김정환 목사는 조사에서 “아버지는 강단 밖에서도 동일한 분이었다”며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하루를 보내셨다. 마지막 말씀은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였다”고 눈물로 전했다. 그는 “아버지는 늘 ‘목사는 성도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믿음과 사랑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성국 목사는 퀸즈장로교회를 다민족 교회로 세워 영어권·중국어권·러시아어권 회중이 함께 예배하는 모델을 구축했다. 또한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 학장, 미주크리스천신문 발행인으로 사역하며 기독교 언론과 신학 교육에도 헌신했다.
예배는 이춘호 목사의 광고와 이용걸 목사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이용걸 목사는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은혜가 유가족과 성도 위에 함께하길 바란다”고 축도했다.
이날의 천국환송예배는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닌, 한 목회자가 평생 불태운 복음의 열정을 기리는 자리가 됐다. 이날 참석한 교계 지도자들과 많은 성도들은 평소 헌신된 사역을 펼치던 고인이 투병 중에도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던 모습과 늘 모든 이들에게 미소를 잃지 않았던 생전 모습들을 회상하며 그의 삶을 깊이 있게 추모했다.
이번 김성국 목사의 장례는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진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