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감에서 남북 '두 국가론'을 다시 주창했다. 또 자신이 주장하는 '평화적 두 국가론'이 "정부 공식 입장으로 확정될 것"이라고 밝혀 논란의 중심이 됐다. 

정 장관이 주장한 '두 국가론'은 본인이 통일부 장관에 취임한 후 밝혔던 내용이라 새롭거나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두 국가론'이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될 것이라고 단정한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 주목된다. 정 장관이 '두 국가론'을 "정부가 논의 중"이라고 밝혔으나 지난달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 누구 말이 맞는지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이날 국감장에서 야당 의원들은 '두 국가론'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따졌다. 그러나 정 장관은 "헌법과 정확하게 합치한다"며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났다. 심지어 "지금 두 국가로 못 가고 있기 때문에 통일로 못 가는 것"이란 주장까지 했다. 

정 장관의 '두 국가론' 헌법 합치 주장에 대해 헌법 전문가들은 물론 정계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정 장관의 견해가 헌법과 충돌한다고 지적한다. 어떤 경우든 북한을 국가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 제3조에 어긋나며, 만약 정부 공식 입장으로 확정할 경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한 헌법 제4조를 위반할 소지도 있다는 거다. 

정치권 안팎에서도 헌법 제3조가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한 점을 들어 정부가 '두 국가론'을 추진하는 건 '위헌'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적대적이든 평화적이든 '두 국가론'은 헌법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사실상 통일을 하지 말자는 주장이란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란 지적이다. 

오죽했으면 여당 의원까지 정 장관의 '두 국가론'을 섣부르다고 지적했을까. 민주당 윤후덕 의원은 "이 문제는 부처 간 협의를 하고, 합의한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어마어마한 개념, 통일 노선 자체가 바뀌는 정도면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된다"고 꼬집었다. 

정 장관의 주장대로 남북이 '두 국가'가 되면 그 건 통일의 명분은 사라지게 된다. 그래도 하나가 되야 한다면 그건 합병이지 통일이 아니다. 완전히 분리된 두 국가가 무슨 명분으로 하나로 합해야 하는지 어떻게 국민에게 설명할 건가. 

이 문제를 놓고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외교부 장관은 '두 국가론'이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하고, 통일부 장관은 정부가 곧 공식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침묵하고 있어 이쯤 되면 단순한 정책 혼선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말을 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이런 논란 속에서 통일부는 최근 새로운 남북 협력 추진 목적으로 발주한 정책연구용역에서 "북한의 입장(두 국가)을 절충해 '평화공존 통일지향'의 새로운 남북 관계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명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누가 뭐라 하던 북한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논란을 넘어 사회적 파장으로 번진 남북 '두 국가론'은 북한이 지난 2023년 남북 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한 데서 출발한다. 북한 김정은은 남한은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침략을 통해 정복해야 할 적이라며 '통일'을 북한 헌법에서 지우라고 지시한 바 있다. 

문제는 김정은이 선언한 '두 국가론'을 우리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가 앞 다투어 지지하는 모양새라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전 의원이 지난해 9월 "통일 하지 말자"며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며 북한 김정은의 주장을 수용하는 태도를 밝히더니 이번엔 한때 민주당 대통령 후보이자 현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는 거다. 

정 장관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는 듯 "개성공단 재가동 준비를 위한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의 복원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3월 해산한 개성공단지원재단을 복원해 개성공단 재가동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인데 이 파장 또한 만만치 않다. 

개성공단은 지난 2016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으로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이 문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대북 제재에 들어갔는데 통일부 장관이 마음먹는다고 하루 아침에 재개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개성공단 재가동을 추진하게 되면 유엔 결의를 위반하는 게 돼 국가 전체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정 장관이 주장하는 '두 국가론'은 당장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고, 나아가 사실상 북한 핵을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한때 대통령 후보였던 비중있는 인사가 국가 체제와 미래, 국민 안전이 걸린 문제를 쉽게 입에 올리고 있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만약 정 장관 말대로 정부가 '두 국가론'을 공식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 사실을 지체없이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야 할 것이다. 국민주권 정부라면 이 중차대한 문제를 결정하기 전에 국민 동의를 구하는 게 우선이다. 

그에 앞서 정 장관은 통일을 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이상 더는 통일부 장관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본다. 스스로 장관직을 사퇴하는 게 자신에게도 떳떳하고 국민 보기에 바른 처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