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상원(House of Lords)이 말기 환자의 조력자살(assisted suicide) 합법화를 논의 중인 가운데, 영국교회 주교들이 이에 강력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에 상정된 '조력자살법'은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직 영국 수석간호책임자 사라 멀럴리(Sarah Mullally) 런던 주교는 "이 법안은 깊은 결함이 많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법을 바꾸는 것은 곧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해당 법이 통과될 경우, 일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위험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멀럴리 주교는 또한 충분한 완화의료(palliative care)와 사회복지 서비스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조력자살은 실제 '선택'이 아니라 환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유혹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학자이자 상원의원인 비가 경(Lord Biggar) 역시 "이 법은 삶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비극적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며 "오히려 경제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에게 불공정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반대 측은 해외 사례도 거론했다. 2020년 국민투표를 통해 조력자살법을 도입한 뉴질랜드의 경우, 최근 5년간의 검토에서 법적 정의와 실행 원칙이 불명확하고 감독체계 역시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법안 반대자들은 상원 밖에서 시위를 이어가며, "말기 진단이 반드시 곧 삶이 끝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실제 사례들을 제시하고, 조력자살 입법 시도가 섣부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