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발표하지 않으면서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헌재 내부 논의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는 가운데,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선고 지연의 이유를 두고 여러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20일 기준, 국회가 윤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지 97일째, 변론이 종결된 지 24일째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론 종결 후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11일 만에 선고를 받았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은 이미 역대 최장 심리 기록을 경신한 상태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후 신속하고 공정한 심리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변론이 11차례 만에 종결된 이후 선고기일이 발표되지 않으면서 심리가 예상보다 길어지는 이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헌재, 신중한 법리 검토 중?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탄핵 사유의 사실관계 확정과 법적 판단을 보다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 측이 신빙성을 문제 삼은 '홍장원 메모'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의 증언 등이 쟁점으로 거론되며, 관련 내용이 헌재 내부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헌법학자는 "윤 대통령이 정치인 체포를 직접 지시했다는 부분이 배척될 경우, 탄핵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며 "헌재가 탄핵 사유의 위헌·위법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재판관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조율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8대 0' 전원일치 판결이 아니라, 5대 3 혹은 4대 4처럼 의견이 갈리면서 결론 도출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윤 대통령이 군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보내라고 지시한 점과 계엄군의 국회 진입 사실 등을 고려하면 헌재가 기존 입장을 번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형사재판과의 정합성 고려?
탄핵심판의 결정문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법원이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결정한 만큼, 헌재가 형사재판 결과와 충돌하지 않도록 법리를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헌환 전 헌법재판연구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헌재가 결정문을 빈틈없이 작성하려는 의도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며 "사회적 대립이 첨예한 만큼, 양측의 주장을 종합해 최대한 수용될 수 있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신중히 논의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탄핵심판 사건과 병행 심리?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함께 진행 중인 다른 공직자 탄핵심판 사건을 고려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는 별도의 탄핵심판 사건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박성재 법무부 장관의 탄핵심판이 함께 진행됐다.
이에 따라 헌재가 한 총리의 탄핵심판을 먼저 선고할지, 윤 대통령 사건과 동시에 처리할지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헌재 "선고 일정 확정된 바 없어"
헌재는 탄핵심판 평의 진행 상황이나 선고 지연 여부에 대해 "확인해 줄 내용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20일 오전 11시 기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은 공식적으로 통지되지 않았다. 선고 일정은 보통 2~3일 전에 공지되는 점을 감안하면, 빠르면 다음 주 초 선고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늦어질 경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일인 26일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