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
누가복음 2:1에는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누구일까요? 이분은 로마 초대 황제였습니다. 그러면 그전에는 로마에 황제가 없었나요? 예, 없었습니다. 그 이전에 로마는 공화정이었습니다. "삼두정치"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즉, 세 명의 리더가 로마를 다스렸습니다.
현대의 공화정에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 입법부 리더인 국회의장,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세 명의 리더들이 로마를 실제적으로 다스렸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공화정에서도 세 명의 리더 중에서 대통령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과 마찬가지로 로마의 삼두정치에서도 그 중 한 사람에게 권력이 쏠렸던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이저"로 알려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분은 유명한 말을 많이 남기기도 했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브루투스, 너마저도" 등 우리들도 기억하는 어록이 많습니다. 이렇게 시이저에게 권력이 몰렸고, 거기다 이분이 정치적 야망까지 있어서 자기 혼자 권력을 독점하려고 하였습니다.
라이벌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고 시이저를 견제하다가 급기야 시이저를 암살하고 맙니다. 시이저의 양자였던 브루투스는 암살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는 바람에 처형을 당했고 또 다른 양자였던 옥타비우스가 시이저의 후계자로 급부상했습니다. 처음에는 옥타비우스 역시 삼두정치, 즉 세 명의 리더 중 한 명이었는데 옥타비우스가 모든 권력을 다 가져가면서 종신 독재자가 됩니다. 황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 명이 균형을 유지하다가 한 사람, 즉 시이저의 힘이 너무 세져서 독재를 하려고 하니까 이를 막으려고 암살을 감행했는데 그 뒤에 나온 사람은 독재를 넘어서 아예 종신 독재, 즉 황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로마 황제들이 로마를 다스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태양신의 아들, 그리고 그 후에는 자신들을 신격화해서 숭배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아무튼 옥타비우스가 로마 최초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우구스투스하고는 무슨 관계인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아우구스투스라는 말은 이름이 아니라 칭호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위대하고 고귀하고 지극히 숭배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옥타비우스와 아우구스투스는 같은 사람입니다. 이분은 BC 27년부터 AD 14년까지 40년 동안 로마 황제로 재위했고 아우구스투스 치세 기간 동안 로마는 평화와 번영을 지속했습니다.
이토록 로마 황제가 식민지와 속국들을 포함해서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인구조사를 위한 호적 등록을 하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라는 말씀을 보면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대대적으로 인구 조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말씀,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처럼 역사적으로 두 번에 걸쳐서 인구 조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로마 제국이 넓으니까 지금처럼 동시에 했던 게 아니라 지역별로, 그래서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시리아를 포함해 팔레스타인과 유대 지역에서 BC 12-2년과 AD 6년에 두 번의 인구조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에 보면,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그러면 인구 조사를 하는데 왜 자기 고향으로 가야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로마가 유대인들 관습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레위기 25장에서 희년에는 원래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로마는 유대의 관습을 이용해 유대 전통을 존중해주는 척하면서 이들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인구 조사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일을 도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요셉과 마리아도 자기들이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북쪽 갈릴리 나사렛에서 원 고향이었던 남쪽 유대 베들레헴으로 가서 호적을 하게 됐습니다. 나사렛과 베들레헴은 약 90mile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아무리 인구 조사이고, 여자들도 인구 조사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반드시 본인이 가야 한다는 법은 없었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있던 마리아가 그렇게 먼 거리를 굳이 요셉과 함께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었던 것입니다.
굳이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 두 사람은 정혼은 했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는데 마리아가 임신을 했습니다. 마리아가 고향에 남아 있었다면 사람들이 마리아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뭐냐? 어떻게 된 거냐?"는 말부터 시작해서 온갖 비난과 정죄를 퍼부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를 우려해 차라리 마리아와 같이 가는 것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보면, 중요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천하의 로마 황제가 인구 조사를 하라고 칙령을 내렸으니 그 칙령을 누가 어길 수 있겠습니까? 광활한 로마 제국 동쪽에 있는 유다가 어디인지? 베들레헴은 또 어디인지? 황제가 거기까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 칙령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몇백 년 전 미가 예언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예언하셨고 그 예언을 로마 황제를 통해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이렇게 이방 세계의 왕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서 타락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혀가도록 하셨고 페르시아 고레스 왕에게 칙령을 내리게 하셔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국을 다스리고 주관하는 황제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온 만물과 세계를 통치하는 분이십니다.
로마 황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인구 조사를 하게 하는 칙령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 역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 섭리의 산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역사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라고 하는 무대 위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무대의 감독이 되셔서 계획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달라스 생명샘 교회 안광문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