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5:8).
청결하다는 말은 깨끗하여 흠잡을 데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역 설적으로 청결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완벽주의의 덫에 걸릴 때가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흠을 잡는 데 전문가들이 되어간다.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발견한다고 우리가 청결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허물을 발견하고 처리한다고 해서 우리가 청결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실 때에 비로소 우리는 청결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가운데 다니지 않으리라"고 하셨다. 다른 말 로 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더러움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는다 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여섯 번째 복도 우리는 이렇게 읽어야 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나로 인하여'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 을 볼 것임이요."
일곱째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 컬음을 받을 것임이요"(5:9).
다투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려다가 낭패를 당해본 경험이 있는가? 싸움을 말리려다가 오히려 말려들어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가?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의 다툼에 절대로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해본 적이 있는가?
아무도 자기 힘으로 세상을 화평케 할 수가 없다. 오직 예수님만 이 우리와 하나님을, 그리고 우리 서로를 화평케 하신다.
그는 우리 의 막힌 담을 허물어주신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 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3-18).
온 세상이 다툼 가운데 있다. 그 다툼의 한복판에서 화평하게 하 는 사람은 복이 있다. 화평케 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분에게만 화목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이 축복에도 예수님이 절대 필요하다. "화평케 하는 자는 '나 때문에'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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