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특선으로 넷플릭스에서 [마리아] 영화를 내놓았습니다. 마리아의 입장에서 겪었을 그 당시의 상황을 설득력 있게 그렸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마 1:23) 저 같은 경우는 너무 익숙한 표현이라, 누가 이 메시지에 의심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남자를 알지 못했던 마리아의 배가 불러오는 것은 이미 약혼을 한 요셉에게는 배신과 환멸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고, 사회적 통념으로도 결혼하지 아니한 여자가 임신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등장인물 중 제일 먼저 이 사건을 받아들이기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은 마리아의 아버지 요아킴(Joachim)이었습니다. 사랑하고 믿었던 딸이 결혼하지 않은 채 임신했다는 사실이 가족의 치욕이요, 사회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던 당시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남자를 모른다는 딸의 항변은 거짓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마리아의 임신 사실에 힘들어했던 인물은 약혼자 요셉이었습니다. 이미 친구들도 돌을 가져다주며 율법대로 돌로 자기의 약혼녀를 쳐 죽여 명예를 지키라는 압력을 주었습니다. 이 엄청난 종교적/사회적 통념 속에서 마리아는 믿음을 지키고 복중의 아기, 훗날 세상을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지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늘 믿어오는 이 사실이, 당시 상황에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냥 이 세상을 구원할 예수님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최악의 스캔들과 함께 메시아가 온다는 사실은 결코 정당한 설득력이 없는데, 왜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어야만 했을까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냥 어떤 신화처럼 백마가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구원자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지은 죄의 가격을 치를 자는 죄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죗값을 치르시는 십자가의 죽음은 쇼가 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님이 죗값을 치루는 것이 아니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에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를 늘 고백하며 예배에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완전 신성과 동시에 사람이신 예수님의 완전 인성은 우리 구원을 위한 필연이었습니다. 처녀가 임신하는 당시의 사회적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성령으로 잉태케 하심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시는 [죄 없는 아기 예수]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필연적 크리스마스 스캔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