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거주할 때, 문화라는 단어는 MBC(문화방송) 말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문화와, 경상도라는 지역 문화 속에 태어나 당연시하며 자라왔고, 또 같은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려 살아왔기 때문에 문화를 자랑하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 이민생활을 하면서,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의 차이점을 인식하게 되면서, 컬쳐, 문화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민자들이 이민생활의 고충을 나눌 때면, 의례히 문화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흔히 이민자들이 겪는 문화차이는 언어생활에서 나타납니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언어장벽 이라기 보다, 표현의 사용처가 다른 것을 인지하지 못해 소통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죄송한 일이 있을 때에 “미안합니다” 또는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평소에 이 말을 달고 살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excuse me”, 혹은 “I’m sorry”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래서, 미국 문화에 익숙한 한인 이민자들이 고국에 돌아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미안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실망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문화 차이일 뿐입니다. 예전에도 칼럼을 통해 말씀드린 적이 있듯이, 한국은 국토가 좁습니다. 인구밀도가 높아 대부분의 국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중에 흔히 겪는 몸이 부딪치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 이해하고 묵인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하는 편이어서 예의 바른 것 같지만, 사실은 정말 책임져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결코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것이 미국 문화입니다. 미국에서 경찰 앞, 혹은 법정에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실제로 미국 이민자들 중에 사고에 휘말려, 아이엠 쏘리 했다가 큰 불이익을 당한 사례가 많습니다.
이 밖에도 문화 차이는 정서에도 나타납니다. 알아듣는 영어 대화가 오고 가도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역사적 배경들을 이해하지 못해, 대화를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어, 대화 중에 웃음 코드가 있는데, 왜 웃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문화차이가 나타납니다. 미국에는 small talk 문화가 있습니다. 처음보는 사람끼리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는 문화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커피숍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금새 친구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요즘은 SNS가 발달해 서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교환하여, 인터넷 친구가 됩니다. 물론, 깊이 있는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단순한 만남이 세상에서는 행운이라고 말하는 큰 복을 낳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업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던 지, 배우자를 만나거나 소개받게 된다던 지, 내게 꼭 필요한 사업 정보를 얻게 된다던 지 여러가지 다양하고 유익한 결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청년부를 섬기던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청년이 자신의 대학교 전공이었던 우주항공학과 공부가 부진하여, 과를 옮길까 하는 고민을 제게 털어 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의 성적으로는 졸업은 할 수 있지만,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고민이었습니다. 당시 청년에게 믿음과 성실함을 보았던 저는 전공을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공부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인도하실 것이다”라고 조언하였고, 청년은 그 말을 듣고, 최선을 다해 공부하여 마침내 졸업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만날 때마다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어느 날, 커피숍에서 가끔 만나 스몰 토크를 하던 중년 백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여느 때와는 다르게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그러다, 서로 같은 분야에서 한 사람은 일자리를 찾고, 또 한 사람은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몰 토크로 만난 백인의 소개로 청년은 항공 관련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 일은 분명 하나님의 기도 응답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께서 스몰 토크라는 미국 문화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언어 문화 외에도 오락, 즉 놀이에도 문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즐기는 것과 일하는 것의 경계선이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풋볼, 농구, 야구는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스포츠입니다. 시즌이 되면, 전국민이 TV 앞에서 응원합니다. 그래서인지, 사업가들이 파트너 사업가들과 거래 혹은 교섭을 할 때, 스포츠 경기장의 특별석을 빌리거나, 티켓을 구입해 함께 구경하며, 사업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골프는 오락과 사업,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 더 없이 좋은 스포츠입니다. 지금은 대한민국도 골프 하면, 스포츠 그 자체보다 다른 많은 일들을 함께 할 수 있는 교두보로 여긴다고 합니다. 반면에 한국은 오락은 오락, 사업은 사업,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을 철저히 구분하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한인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이뤄지는 파티, 회의와 같은 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습니다. 언어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러한 모임에 그다지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학교에서 진행하는 행사 참여도가 떨어집니다. 펀드레이징 모임에도 파티에도 콘서트에도 참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임에서 뒤에서 많은 일들이 결정되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입니다.
아쉽게도 우리 한인 이민자들 뿐 아니라, 한인 2세들도 이곳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이 같은 미국 문화와 정서에 온전히 스며들지 못한다는 느낌입니다. 의식 혹은 무의식 중에 학습된 부모님의 정서를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인 이민 사회를 연구한 한 학자는 한인 2세 3세를 일반적인 미국인으로 정의하기보다 코리안 어메리칸으로 정의합니다. 단순히 인종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여전히 한국 문화와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세 3세들은 부모님 세대의 문화에 익숙하고 어떤 면에서는 지향하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맞지 않는다고 느끼고 불편해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인 2세 3세 자녀들은 스스로가 하이브리드, 즉 다중문화를 가지고 있는 미국인임을 인정하면 좋겠습니다. 미국인으로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여, 양쪽 모두에 더 깊은 이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더 미국 가정의 문화를 알고 추구하면서도, 한국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여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율배반적으로 자신에게 편한 문화를 선택적으로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이쪽 저쪽을 다 이해하며, 한국 정서를 가진 사람과 커뮤니티에서는 한국 정서로, 또 미국 정서를 가진 사람이나 커뮤니티에서는 미국 정서로, 또 복잡한 상황 속에서는 적절히 타협하며, 지혜로운 대처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민 1세대 혹은 1.5세대의 정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문화차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니, 전도와 선교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도와 선교도 사실은 문화차이를 잘 이해하고 극복하는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17세기까지 선교는 문화정복의 개념이었습니다. 지배의식과 배타의식을 가지고 서양문화를 강요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선교지는 미국 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나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양 선교사들의 눈에는 선교지 현지인들이 미개해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19-20세기에 들어 선교의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목사님은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중국 내륙 선교로 유명한 중국 선교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중국 선교를 위해 중국말을 유창하도록 노력했고, 중국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마치 중국이 자신의 조국인양 선교하였고,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평양대부흥운동도 문화적인 지배의식과 배타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한국에 나와 있는 선교사들의 회개로 시작된 부흥운동이었습니다. 부흥 사역회 때에 지금껏 한국인들의 수준을 낮게 보고 서양문화를 강요했던 한 선교사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였고, 그 선교사의 회개 어린 설교를 들은 다른 많은 선교사들도 함께 회개함으로 선교는 겸손한 선교로 바뀌었고, 그러한 선교사들의 겸손함이 수많은 영혼들에게 감동을 주어 마음이 열렸고, 그 열린 마음 가운데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전도도 같은 맥락입니다. 복음이 있고 없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언어 문화의 차이, 정서의 차이, 지식의 차이를 이해하는 가운데,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필요한 덕목은 겸손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상처를 위로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그저 챙겨주며 기다려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교회가자”, 혹은 “내가 믿는 주님은 내게 이런 은혜와 축복을 주셨다”라고 직접적으로 간증하고 소개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에게 거부감과 혐오감을 주어 도리어 마음 문을 닫게 만들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겸손으로 무장하셔서, 다시 전도와 선교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