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민 목회자로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건강한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중요한 질문입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병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전혀 아픈 것이 느껴지지 않는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때라도 몸에 병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하면 병을 이겨냅니다. 병을 극복합니다. 병을 물리칩니다. 병을 치료하면서 몸이 더욱 강건해집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강에 대한 정의가 있습니다. 인격 의학을 창시한 폴 트루니에 박사가 내려 준 정의입니다. “건강이란 병이 없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건강은 삶의 질적 문제이다.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구김살이 없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다.”(폴 투르니에, 『인간 치유』, 생명의 말씀사, 96쪽). 구김살이 없다는 것은 성품이나 태도가 순수하고 밝고 평온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강의 문제는 질병 유무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건강에 대한 관점과 해석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문제와 갈등이 전혀 없는 교회란 뜻이 아닙니다. 상처입은 사람이 전혀 없는 교회란 뜻이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는 문제와 갈등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는 교회입니다. 문제를 통해 기적을 경험하고 갈등을 성숙의 기회로 삼는 교회입니다. 상처를 치유하고, 상처를 진주로 만드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상처 가운데 태어난 교회입니다. 고난 중에 태어난 교회입니다. 고난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은총의 도구입니다.
저는 이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목회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빈손으로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마라의 쓴물처럼 목회의 쓴맛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통해 새로운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고통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모든 고통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올려진 고통은 놀라운 기적의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고난 중에 새로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난 중에 더욱 지경이 확장됩니다. 고난은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뻗어나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새 일을 이루십니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어 주십니다(사 43:19).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십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의 약한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십니다.
건강한 교회는 천국 문화를 형성하는 교회입니다. 제가 소망하는 문화는 존중의 문화입니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문화라는 영어 단어 “culture”는 라틴어 “컬추라”(cultur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 뜻은 “경작하다, 재배하다”입니다. “문화”라는 단어의 원뜻은 경작과 양육을 통해 어떤 것을 가꾸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마치 논밭을 경작하듯이 존중의 문화는 오랜 시간을 걸쳐 형성됩니다. 가정과 공동체에서 존중의 문화가 형성되기 위해서 반복해서 말하고, 반복해서 강조해야 합니다. 또한 존중의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가치와 잠재력과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고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입니다. 반면에 경멸의 문화는 지옥의 문화입니다. 경멸은 멸시하는 것입니다.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가치를 폄하하는 것입니다. 지옥의 문화는 차갑습니다.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문화입니다. 경멸하기 시작하면 가정과 공동체는 지옥을 맛보게 됩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존중은 곧 사랑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고전 13:5). 존중은 온유입니다. 사랑하면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을 조심스럽게 대합니다. 따뜻하게 대합니다. 부드럽게 대합니다. 존중의 문화는 따뜻한 문화입니다. 차가운 겨울에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겨울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하지만 봄이 되면 나무에 싹이 틔고 꽃이 핍니다. 봄은 따뜻합니다. 차가운 겨울에 잠을 자던 나무는 봄의 따뜻한 기운에 깨어납니다. 땅속에 잠자던 씨앗이 발아하면서 꽃이 피어납니다.
존중하는 문화는 하나되는 문화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문화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은 서로를 존중하십니다. 서로 협력해서 창조와 구속의 사역을 완수하셨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은 서로를 존귀히 여기십니다. 함께 존귀한 일을 도모하십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사 32:8). 가장 존귀한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선교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고 보배롭게 여기십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사 43:4상). 그러므로 우리도 만나는 사람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창립 15주년을 맞이한 우리 교회가 계속해서 존중하는 문화를 가꾸고 전수하길 기도드립니다. 새생명비전교회를 건강한 교회로 세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낙옆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Washington, D.C.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