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말하는 것을 배우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침묵이 쉬울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 영성 수련회에 참석해서 한 나절 동안 침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부터 침묵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을 잠시 경험했습니다. 물론 그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은 잠시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비로운 고요를 경험했습니다.

늘 말을 하며 사는 우리는 잠시 침묵하라는 부탁을 들으면 당황합니다. 침묵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침묵은 어색함을 낳습니다. 그 어색함의 순간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침묵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습니다. 그래서 침묵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침묵의 중요함을 가르치는 책을 읽곤 합니다. 저는 스스로 침묵하는 시간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침묵을 통해 마음의 고요함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깊은 침묵은 고요함을 낳습니다. 침묵 훈련의 초기에는 많은 생각들이 왕래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생각들에게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때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영혼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고요함입니다. 고요함은 평강입니다. 깊은 고요함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경험합니다. 영혼은 고요하신 하나님과 연결될 때 고요함의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침묵 기도가 중요합니다. 고요한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립니다. 고요한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찾습니다.

영혼은 산만함과 시끄러움과 혼돈을 싫어합니다. 분주함과 서두름을 싫어합니다. 무질서를 싫어합니다. 영혼의 고요함을 가꿀 줄 아는 사람은 허둥대지 않습니다. 정신 산란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일이 밀려와도 조용히 일을 하나하나 처리합니다. 신비롭게도 마음이 고요하면 호수처럼 맑아지고 밝아집니다. 그래서 직면한 문제의 원인을 보게 됩니다.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게 됩니다. 고요한 침묵 중에 놀라운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분별력을 얻게 됩니다. 예견력을 갖게 됩니다. 고요한 침묵 중에 하나님이 선물해 주시는 지혜와 깨달음과 영감을 얻게 됩니다.

깊은 침묵은 내면의 힘을 제공해 줍니다. 말을 많이 하면 힘이 빠집니다. 말을 많이 하고 나면 왠지 공허합니다. 후회스럽습니다. 반면에 침묵하면 힘을 얻게 됩니다. 침묵은 경청을 낳습니다. 경청은 귀기울임입니다. 경청은 깊은 관심입니다. 누군가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말하는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침묵의 지혜는 말을 전혀 하지 않는 지혜가 아닙니다. 말을 아끼는 지혜입니다.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잠 17:27). 말을 아끼면 지혜로운 자로 여김을 받게 됩니다.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잠 17:28). 침묵의 지혜는 꼭 필요한 말, 가치 있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습니다. “말을 하려거든 침묵보다 더 가치 있는 말을 하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한 말입니다. 가슴에 새긴 말이지만 그렇게 살지 못해 늘 아쉽습니다.

침묵의 지혜는 말을 통제하는 지혜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라도 필요한 말이 아니면 삼갈 줄 아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데마라투스는 “말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미성숙한 사람은 절대로 말을 통제하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침묵한 것 때문에 후회하기보다는 우리가 한 말 때문에 후회할 때가 더 많습니다. 유대교 철학자이며 시인이었던 이븐 가비롤은 “침묵한 것에 대해선 한 번쯤 후회할 수 있지만,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서는 자주 후회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30대 대통령, 칼빈 쿨리지도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은 한 번도 나를 해롭게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침묵의 지혜는 적합한 때에 적합한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름답습니다. 감동을 줍니다. 울림을 줍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 25:11). 침묵이 중요하지만 말과 표현의 능력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지금도 말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말을 통해 구애합니다. 말을 통해 필요한 것을 부탁합니다. 우리가 침묵하는 법을 배우는 까닭은 말을 잘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날마다 침묵하는 법과 말하는 법을 배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침묵 훈련을 통해 침묵 중에 적합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