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스위스가 낳은 호스피스 운동의 세계적인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의 『인생수업』(이레, 2000) 이라는 책을 오랜만에 펼쳤다.
몇 해 전, 그녀는 한 병원에서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했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얼굴이 몰라보게 밝아진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 때문이 아니라 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부 아주머니 때문이었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중환자실에 왔다 갈 때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엘리자베스는 그 비결을 알 수만 있다면 백만 달러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복도에서 마주친 그녀에게 엘리자베스는 다소 무뚝뚝하게 물었다. "도대체 내 환자들에게 어떻게 하는 거죠?" 청소부 아주머니는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그냥 병실을 청소할 뿐이에요."
그녀가 어떻게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지 비밀을 알고 싶어서 엘리자베스는 눈에 안 띄게 그녀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녀가 별달리 특별한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뒤를 밟은 지 2~3주가 지났을 때, 그녀는 엘리자베스를 붙잡아 간호사실 뒤켠에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몇 해 전 겨울에 자신의 여섯 아이 중 하나가 몹시 아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한밤중에 세 살 난 아들과 함께 응급실에 가서, 아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몇 시간 동안이나 의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그녀는 품 안에서 어린 아들이 폐렴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 모든 고통과 아픔을 어떤 증오나 원한, 분노도 담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왜 그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것이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무슨 관계가 있죠?"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죽음은 내게 더 이상 낯설지 않아요.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 같아요. 가끔 중환자실에 들어가 보면, 환자들은 몹시 겁에 질려 있어요. 그러면 나도 모르게 다가가서 그들을 쓰다듬게 돼요. 나는 그들에게, 나도 죽음을 보았는데 죽음이 다가와도 무섭지 않을 거라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그냥 함께 있어 줍니다.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나는 다른 사람들 곁에 있어 주려고 노력해요. 그것이 사랑이지요."(『인생수업』, 56-57)
심리학이나 의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이 여성은 삶의 가장 큰 비밀 하나를 알고 있었다. 다음은 엘리자베스의 말이다.
"그녀가 말한 삶의 가장 큰 비밀은 바로 '곁에 있어 주는 것'이며, '돌봐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엘리자베스의 생각과 다르다. 그보다 더 깊고 근원적인 것이다. 아무나 곁에서 돌봐준다고 먹히는 건 아니다. 자신들을 곁에서 돌봐주는 이가 다름 아닌, 사랑하는 자식이 죽음을 맞이할 때 품에 안고 죽음의 공포를 미리 맛보았던 어머니였기에 그녀의 애틋한 사랑을 피부로 체험한 환자들의 얼굴에 그런 변화가 일어났을 것으로 본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갈 때 그 공포를 고스란히 먼저 경험해보았기에 죽음으로 인한 겁에 질린 환자들을 쓰다듬어 주고 마음의 평안을 가지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유경험자의 한 마디는 이처럼 힘이 있다. 똑같은 아픔을 미리 경험해보았기에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이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유산으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가진 이에게는 위로와 힘이 되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에 아이 둘을 유산한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산한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갖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아픔과 고난에 더없이 큰 위로와 힘이 되시는 분이 한 분 계신다. 바로 주님이시다.
히 4:1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여기서 '동정하다'는 헬라어로 'συμπαθέω'인데, 이것은 '함께'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σύν'과 '고통을 당하다', '고난을 겪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πάσχω'가 합쳐진 단어이다. 즉 'συμπαθέω'는 '함께 고난을 당하다', '함께 고통을 겪다'란 뜻이 있다. 이유는 그분이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경험해보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공감하시고 함께 아파하실 수 있으신 것이다. 그게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헨리 나우웬(Henry Nouwen)이 쓴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주님이 살아생전에 입은 상처가 많은 분이시기에 치유자로서 적격이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오늘 우리 역시 다 상처를 입은 경험들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치유자가 될 자격이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앞에서 소개한 청소부 아줌마나 주님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멋진 치유자로 살아가길 원하신다. 주님의 사랑과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나아가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힘과 소망을 갖게 하길 바라신다. 남은 생 그 사명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