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배를 탔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학교를 그만뒀다. 17살,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할 나이 그는 집을 훌쩍 떠나 서울로 상경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부랑자 삶이 시작되고, 폭력배, 절도 사건도 저질렀다.

감옥에도 2번 다녀왔다. 그가 잡혀간 감방 안에는 긴급조치 9호, 김대중 대통령, 김지하 시인, 서울대학교 정외과 4학년 학생들이 같이 있었다. 감옥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대표기도를 했다. 예배를 드렸지만 감옥에 나와서도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갈 곳이 없었고, 직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 만나기 전의 삶을, 짐승의 삶, 인간 이하의 삶이었다고 묘사하는 고봉준 목사가 LA를 방문해 죄인에게 내린 하나님의 자비를 전하며, 복음을 말로 전할 뿐 아니라, 몸소 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주일 4월 14일 고봉준 목사와 만나 그의 신앙과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86년 봄에 주님을 제대로 만났습니다. 그 전에는 회개하려고 노력했으나 회개가 안 되었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콜링을 받은 것은 78년도입니다. 당시 베다니 교회(당시 최복규 목사님이 담임할 때)에 다니고 있었는데, 금요철야 예배에 참석했는데 말씀이 불로 다가왔습니다. 장로님이 지나가면서 내 몸을 탁 쳤는데 내 몸에 불이 붙어서 팔팔 뛰면서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고 이 다음에 교도소에 다니면서 세계에 다니면서 복음 전하는 부흥사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 동안 그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세상속에서 타락하여 살다가 대장에게 반 죽을 만큼 매를 맞고 있는데 ‘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구나!’ 하고 매를 맞으면서 하나님의 콜링을 느꼈습니다. 그 후로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3일 금식하고 회개하고 그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고봉준 목사(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남부지방회 소속 목사)
(Photo : 기독일보) 고봉준 목사(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남부지방회 소속 목사)

“98년도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사역은 92년도부터 교도소와 유치장을 방문하여 전국에 2천번 이상을 사역하고, 미국 LA는 73번째 부흥회를 이끌었고, 미국은 26번 집회를 했습니다. 17개국에 복음을 전하고 해외 집회를 450회 정도 했습니다.”

“목사가 되어 사역을 해도 해결되지 않은 기도제목을 놓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 28년간 기도를 했습니다. 2011년 3월 어느 날 교도소 사역을 갔다 오니 와이프가 ‘당신이 버린 아들이 당신을 찾는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의 편지를 받고 아들 만나기 위해 미나폴리스로 가서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눈물로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고 하셨는데 아들에게 용서받고 천국에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아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내면이 치유 받고 난 후 부흥 강사로 들어 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들과 저는 용서하고 용서받은 회복된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지켜 주시고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13년 동안 사역을 위해 1톤 트럭을 가지고 도매상에서 생선을 사다 팔면서 아파트 대출금 외에는 100% 다 교도소 사역을 하는데 사용했습니다. 교도소에서 원하는 기자재, 선풍기면 선풍기, 떡이면 떡 원하는 것들을 아낌없이 사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도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 공급해 주시고 채워주십니다.”

그는 LA집회가 끝나면 콜롬비아로 가서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한 달 후인 6월에는 네팔에서 16번 설교를 전할 예정이다.

고봉준 목사는 여전히 교도소와 노숙자 쉼터에 정기적으로 방문해 복음을 전하고, 개척교회도 자비량으로 가 섬긴다며, “철저히 회개했으니 불러주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정직하게 부흥회를 인도하길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교도소 선배라며, 그의 책을 통해 삶이 변화되었다는 재소자들의 간증을 나눴다.

“교도소는 전도의 황금어장입니다. 저는 교도소에 있는 분들에게는 선배입니다. 실형을 2번이나 살아봤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압니다. 2천번 이상 교도소 사역을 하면서 수 없이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편지도 주고 받으며 복음을 전하니 그들을 변화가 되었습니다. 때론 어려운 제소자들에게 영치금도 넣어주고 가지고 있는 물질을 아낌없이 그들에게 부었습니다.”

“제 책이 ‘꼴통목사의 전도법’ ‘영화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제 책을 너무 많이 돌려봐서 책이 찢어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한 형사분이 연락이 왔는데, 자기에게 잡혀서 교도소에 간 사람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는 거예요. 책을 읽고 자기도 저렇게 변화된 삶을 살고 싶다고,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이제는 다시는 교도소에 들어가는 삶을 안 살겠다고 했다’면서, 아버지를 대신해 이메일을 보내 온 학생도 있었습니다. 내가 변화된 삶을 보여주니 변화되고 싶어합니다.”

그는 무엇보다, 믿음은 관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되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수님께서도 말로만이 아니라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본을 보이고 사는 목회자들이 있다면 그것을 닮아 살고자 하는 자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말이 아닌 삶으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설교한대로 살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나를 향해 박수쳐 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내가 그 영광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은 액션입니다. 믿음 있는 만큼 봉사하고 믿음 있는 만큼 물질도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욕심 버리고 초대교회처럼 살면 성도가 몇 명 없어도 빛이 나고 힘이 납니다. 반대로, 세상과 양다리 걸치면 빛을 잃고 힘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