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렬 교수와 함께 하는 성탄주간 묵상
이장렬 교수와 함께 하는 성탄주간 묵상

이장렬 교수는 서울대학교(B.M.)를 졸업하고 서든침례신학대학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M. Div.를, 영국 에딘버러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 신약학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2010년부터 캔자스시티에 소재한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 교수로 다양한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Ph.D. 논문을 지도하고 있다. <Christological Rereading of the Shema in Mark's Gospel>, <바디매오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성탄주간 묵상 (1) [2023년 12월 18일 월요일] 우리의 굴곡진 삶과 예수님의 계보

 성탄주간 묵상 (2) [2023년 12월 19일 화요일] '바벨론'에 갔다고 다 끝장 난 것은 아니다!

성탄주간 묵상 (3) [2023년 12월 21일 목요일] 따뜻한 의로움

 성탄주간 묵상 (4) [2023년 12월 21일 토요일] 제4의 반응

[2023년 12월 19일 화요일] '바벨론'에 갔다고 다 끝장 난 것은 아니다!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1:11-12, 16-17
1: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말씀 해설 및 묵상>

정교한 14 × 3의 구도를 지닌 예수님의 계보(마1:1-17)에서 바벨론에 관한 거듭된 언급이 눈에 띈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11절)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관한 진술(12절)은 서로 붙어 있어 놓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마태가 제시한 예수님 족보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17절이 다시금 바벨론을 언급한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마태가 제시한 이 계보의 중심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1:1; 1:16-17), 그 중심과 연결된 세 축에도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세 축은 바로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놀랍게도(!) 바벨론 포로생활이다. 마태가 제시한 그리 길지 않는 예수님 족보 가운데 바벨론이 거듭 또 거듭 등장하는 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건에 복음서 기자가 주목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주전 6세기의 성전파괴와 이어진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 가운데 많은 유대인들은 '이제 모든 게 완전히 끝장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언젠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 '만일 섬기시는 교회에 화재가 나서 교회건물이 전소된다면 어떤 느낌이 드시겠습니까?'라고 감히 물었다. 철저히 가정된 상황임에도 금세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필자는 강의를 듣던 목회자들께 이렇게 말했다. '주전 6세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성전 파괴는 교회 건물의 전소보다 천 배 이상의 공포를 가져오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자 희생제사(즉, 죄사함)의 공간인 성전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신 숭배자들에게 처참 패배하여 그들의 땅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무너지는 것 같을 때도, 온 세상이 다 뒤집힌 것 같을 때도, 하나님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성전이 파괴되고 나라를 잃고 이방인의 땅으로 강제 이주하여 포로 신세로 지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상황 가운데 있다고 하나님이 이제 더 이상 일하시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이후에도 하나님은 그의 일을 계속 하신다. 그리고 메시야의 족보 역시 계속 이어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실 그때까지 말이다(1:16-17)!

우리 인생이 마치 바벨론에 사로 잡혀 간 것 같을 때가 있다(이하 필자 주). 모든 게 끝장나 버린 듯이 느껴질 때가 있다. '성전'이 파괴된 것 같고, 원치 않는 땅에 강제 이주된 것 같으며, 포로로 전락한 것 같은 시간이 있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다 무너져 내리고 하늘마저 우리 위로 주저 않은 것 같으며, 심연에서 다시는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희망 유실과 자포자기의 시간 가운데 있을 수 있다. 그 가운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한탄이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되뇌이며 자포자기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그러니까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바벨론에서 그러셨듯 말이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12).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신다.

 한 줄 기도: 모든 것이 끝장난 것 같은 바로 그 순간에도 여전히 일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오늘 소망케 하소서.

편집자 주, 본 성탄묵상 가이드는 이장렬 저, <마태복음 1-2장을 중심으로 한 25일간의 성탄 묵상>(2019, 요단출판사)에 근거한 내용이며 요단출판사 및 저자의 동의 하에 게재합니다. 이 책에 관한 추가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5일간의 성탄 묵상| https://mall.godpeople.com/?G=9788935017898

 


필자 주

 

유대인들은 포로로 잡혀간지 70년 만에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왔다. 그러나 막상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유대인이 정치적 독립을 획득했던 기간은 마카베오 혁명에 의해 성립된 하스모니안 왕조의 통치 100여 년 정도뿐이었다. 그 시기 외에는 줄곧 외세의 간섭과 압제에 시달렸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활동하시던 1세기 당시에는 그 이전 어느 왕국보다 더 강한 제국, 로마의 간섭과 압제가 유대인들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 유대인들 가운데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고취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리고 메시야가 이 땅에 나셨다! 그러나 그는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가져오는 군사 지도자가 아니었다. 한 세상 나라를 또 하나의 세상 나라로 대체시키는 정치 지도자도 아니었다. 예수님은 죄의 폭정과 그로 인한 포로됨으로부터의 참되고 지속되는(영원한) 해방을 가져오는 메시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