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선지자는 무함마드입니다. 무함마드는 570년에 아라비아반도의 메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종족은 꾸레이시입니다. 무함마드의 아버지 압달라는 카리비안 상인이었는데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2달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함마드가 6살 때 어머니 아미나 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졸지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떠난 후 무함마드는 할아버지에 의하여 양육을 받게 되는데 할아버지 또한 2년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어린 무함마드는 결국 숙부 아부 딸립이 입양합니다. 아부 딸립은 그를 자기 아들처럼 대하여 주었습니다.
무함마드가 메카에 태어났을 때 아라비아는 여러 족속과 종교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종족간에 잦은 마찰로 피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무함마드의 조상되는 쿠사이 이빈 콜라빈은 쿠레시 종족의 리더가 된 후 각종 신을 섬기는 카바를 세웠습니다.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여러 종족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카바에 “모시고” 일 년에 한 번씩 그들의 신을 섬기기 위하여 메카로 향하였습니다.
메카의 카바 신전에는 아라비아의 여러 종족이 섬기는 360개의 우상이 있었습니다. 아라비아의 종족들은 매년 메카에 모여 5일 동안 그들의 신을 섬기는 종교 행사를 했습니다. 이들은 종교행사를 할 때만큼은 모든 싸움을 중단하고 카바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았습니다. 그들은 아라비아반도의 이 종교 행사를 하지라고 불렀습니다.
무함마드는 12살의 어린 나이에 카리비안 무역을 하는 삼촌을 따라 난생처음 아라비안 반도를 떠나 “다른 세계”인 시리아를 가게 됩니다. 이슬람 전통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성실하고 정직한 것뿐만 아니라 또한 사업 수단이 뛰어나 카리비안 무역을 잘 감당해 메카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무함마드는 부유한 상인과 사별한 과부 카디자에게 고용이 되면서 아라비아반도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여러 부족의 종교를 접하게 됩니다. 당시 미망인이었던 카디자는 무함마드의 성실함과 사업 능력에 끌려 40세의 여인이 15세 연하인 25세의 젊은 청년 무함마드에게 청혼하여 둘은 결혼하게 됩니다.
부유한 상인 카디자를 아내로 맞이한 무함마드는 물질적인 여유를 누리게 되면서 메카에서 벗어나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하여 히라산을 갑니다. 무함마드는 한동안 아랍 사회의 모순과 악습에 대하여 많은 고심을 하였습니다. 그가 40살이 되었을 때 히라산의 한 동굴에서 기도하던 중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계시를 받게 됩니다. 처음에 그는 사탄에게 홀렸다는 생각이 들어 내적으로 큰 혼란을 겪었으나 산에서 내려온 무함마드는 그의 아내 카디자에게 그가 본 계시를 말하였을 때 카디자는 그 계시가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알라에게 온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줍니다.
610년부터 632년까지 23년간 무함마드는 천사 가브리엘에게 계시를 받아 꾸란을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꾸란은 무함마드 사후에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무함마드를 선지자로 믿고 따르는 적지 않은 무리가 알라의 계시를 외웠습니다.
무함마드는 613년부터 자신이 받은 계시를 메카에서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은 오직 하나밖에 없으며 알라가 유일한 참신이라고 전파를 하였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니 유일신인 알라를 믿으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신은 오직 알라밖에 없으므로 메카에서 섬기는 모든 신을 섬기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무함마드의 메시지를 들은 아랍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를 유대인과 크리스천처럼 유일신을 섬기는 “선지자”로 간주하고 무함마드의 “새 종교”를 용납하였습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이방 신을 섬기는 아랍인들과 그들의 조상들은 모두 영원토록 지옥 불에 떨어진다고 외치자 아랍인들은 그를 거세게 저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메카의 사람들은 무함마드가 여러 종교가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데 큰 해가 될 뿐만 아니라 메카의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을 크게 우려하여 그를 핍박할 뿐만 아니라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밈니다. 하지만 그의 삼촌 아부 딸립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인하여 무함마드를 제거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부 딸립은 619년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무함마드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게 된 것입니다. 622년에 메카 사람들이 무함마드를 죽일 음모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은 메카를 탈출하여 200마일 북쪽에 위치한 메디나로 도망을 합니다. 무함마드가 박해로 인하여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을 헤지라라 하는데 이때가 이슬람 달력의 원년입니다. 이슬람 달력의 시작은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정착한 622년 9월 24일부터 시작이 됩니다.
메디나에서도 메카처럼 여러 족속이 다양한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메디나에는 유대인 족속이 셋이 있었고 아랍 족속은 둘이 있었습니다. 이들 족속 간에는 잦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없었던 메디나 사람들은 중립적 위치에 있던 무함마드에게 중계를 요청하였습니다.
무함마드는 13년 동안 메카에서 설교하였지만 그의 사역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여 단지 소수인 약 150명 정도의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디나에 온 무함마드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메디나에 있는 아랍 족속은 무함마드를 알라가 보낸 선지자라고 인정하고 그에게 충성을 약속하였습니다.
메카에서 피신하여 메디나로 간 무함마드는 그를 따르는 큰 세력을 얻게 되자 그의 이슬람 전파 계략을 전적으로 바꿉니다. 메카에서는 오직 평화의 메세지를 전하였지만 메디나에서는 이슬람 전파를 위하여 칼의 지하드를 하게 됩니다. 메디나에서 무함마드의 가장 큰 “발견”은 지하드입니다. 메카의 무함마드는 알라의 선지자로서 오직 계시를 전파하였지만 메디나의 무함마드는 선지자뿐만 아니라 정치가요 또한 군대의 장군으로서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모든 족속을 정복함으로써 아라비아반도를 한순간에 이슬람화합니다. 메카에서 탈출한 8년 후인 630년에 무함마드는 10,000명의 군사를 앞세워 메카로 진군하여 피의 저항 없이 입성하여 카바 신전에 있는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오직 알라신만을 섬기게 됩니다. 무함마드의 마지막 9년은 알라에게 복종하지 않은 “불신자”와 65번의 작고 큰 전쟁을 통하여 아라비아반도의 모든 영토를 정복하여 이슬람화합니다. 무함마드는 632년에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아라비아에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무함마드는 죽었지만 무력의 지하드는 중단 없이 지속하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이라크) 와 시리아 (633년), 이집트 (639년), 팔레스타인, 아르메니아, 북아프리카 (643년), 소아시아 (717년), 스페인 (712년), 프랑스 남부(722), 유럽 (1,400년 초), 콘스탄티노플 (1,453년), 페르시아, 파키스탄, 서북 인도를 전쟁을 통하여 대부분의 나라를 이슬람화하였습니다. 지금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기 위하여 지하드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하드를 통하여 온 세계의 족속과 나라를 샤리아법 통치 아래 두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