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섭 목사 (오스틴 한인장로교회)

 김준섭 담임목사 (어스틴한인장로교회)

Grace Again! 다시 은혜로

'은혜(grace)'는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익숙한 주제이면서도,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알고 있나요? 은혜를 아는 만큼 일상을 은혜 안에서 살고 있나요?

지금부터 5백년 전 종교개혁의 시대는 '은혜를 재발견하는 시대'였습니다. Sola Gratia! 은혜 회복을 향한 개혁가들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외침은 오늘날과는 무관할까요? D. A. Carson은 미국의 한 교단 리더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교단 리더는 자신이 속한 교단의 역사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다음 세대에서 현재 세대로 오면서, 복음은 점점 약해지고, ·정치적 노력만 남게 되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영적인 현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우리는 교단 리더의 말에서 '복음' 자리에 '은혜'를 대입할 수 있습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다음 세대에서 현재 세대로 오면서, 은혜는 점점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사회·정치적(인간적인) 노력만 남을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은혜를 회복해야 되고, 은혜의 본질을 재발견해야 합니다.

은혜란 무엇인가요?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무엇일까요? 마 20장의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 포도원 주인을 통해 - 우리는 은혜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포도원 주인은 자신이 직접 일꾼들을 찾아 나섭니다. 주인은 일꾼 찾는 일을 자신 밑의 관리인(십장)에게 맡겨도 될 텐데,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것도 다섯 번이나, 일꾼들을 찾습니다.

둘째, 포도원 주인에게 지금 일꾼들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꾼들에게 일이 필요합니다. 오후 5시에 고용된 일꾼들의 경우 - 이들은 일 마치는 오후 6시까지 겨우 한 시간 일할 수 있을뿐인데 - 주인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요?

셋째, 주인이 나눠주는 품삯(한 데나리온)은 일꾼들을 향한 주인의 크나큰 호의입니다. 본래 한 데나리온은 숙련된 일꾼에게 지급되는 하루 품삯입니다. 비숙련 일꾼의 일당치고는 굉장히 많은 액수입니다. 이 점에서, 아침에 일찍 온 사람이나 오후 늦게 온 사람이나 누구도 한 데나리온을 받을 자격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모두에게 풍성한 호의(은혜)를 베풉니다. 주인의 호의는 주인의 마음 안에 있는 긍휼(compassion) 때문입니다.

오후 늦게 고용된 일꾼들이 수고한 시간에 대해서만 삯을 받는다면, 그 액수는 얼마 안되고 그것으로는 그 날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할 음식을 준비하기에 충분치 못할 겁니다. 포도원 주인은 이것을 아는 겁니다. 주인 마음의 긍휼이 일꾼들에게 풍성한 나눔을 - 일꾼들의 자격, 일꾼들의 노력 이상의 나눔을 - 베푸는 겁니다.

포도원 일꾼들 모두가 주인 마음의 긍휼을 알았다면, 각자 주인에게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다면, 그들 중에는 원망의 소리가 없을 겁니다. 주인이 늦게 온 일꾼들에게도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을 나눌 때, 이들은 원망 대신 오히려 주인 마음의 넉넉함에 감격했을 겁니다. 하지만, 원망하는 일꾼들은 자신의 본성대로 생각합니다. 주인의 선한 뜻보다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욕심을 따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은혜에 대한 감사보다는 나의 수고, 나의 공로, 나의 노력을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보상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포도원 주인은 다릅니다. 포도원 주인은 인간의 본성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이기적이지도, 계산적이지도, 자기 욕심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것을 풍성히, 아낌없이 베풉니다.

이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긍휼이 너무나도 풍성하십니다. 죄인된 우리를 위해 그 분 자신을, 그의 가장 소중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초월한 사랑을 십자가에서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는 내가 점점 중요해지고, 나의 자아가 점점 강조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은혜입니다! 내가 아닌 은혜. 나의 자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 우리의 입술에서 은혜가 고백되고, 우리의 신앙에서 은혜가 회복되고, 우리 삶의 중심에 은혜가 자리할 때, 우리 시대는 참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우리를 넘어 사랑하는 다음 세대에게 전수될 겁니다.

다시 은혜로 돌아갑시다. Grace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