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으로 가는 과도기인 삼두정치 시절 이야기입니다. 로마 역사에 두 번의 삼두정치가 있었습니다. 1차 삼두정치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협력하여 로마를 지배했습니다. 이때는 공인된 국가기구나 법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세 사람이 돌려막는 협정이었습니다.
2차 삼두정치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셋이서 권력을 나누었습니다. 이때는 형식적으로는 3인 위원회로 집정관를 나눴지만, 실질적으로는 권력의 암투가 심했던 기간이었습니다.
2차 삼두정치가 시작되자마자 세 사람은 카이사르 암살파와 공화정 지지파 소탕작전을 하며 2천 명 이상을 체포했습니다. 한때 옥타비아누스를 도왔던 키케로도 옥타비아누스 손에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쟁투의 과정에도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세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Cleopatra)와 사랑을 나누며 이집트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두 가지 소식을 듣습니다. 하나는 안토니우스의 아내 풀비아(Fulvia)가 죽었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폼페이우스가 삼두정치 반대 세력을 키운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로마에서 셋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Octavianus Caesar)는 의견이 달라 다투었고 레피두스(Lepidus)는 둘을 중재하느라 바빴습니다. 레피두스의 중재와 폼페이우스 극복이라는 공통 목표 때문에 둘은 화해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권고로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누이 옥타비아(Octavia)와 결혼했고 셋의 관계는 개선되었습니다. 한편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결혼 소식을 듣고 질투심에 불탔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옥타비아를 알아보니 그녀가 특별한 매력이 없는 평범한 여인이라는 것을 알고 안심했습니다. 그녀는 언젠가는 안토니우스가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을 확신했습니다.
세 지도자는 폼페이우스와 긴 회의 끝에 시칠리아와 사드니라 섬의 통치권을 폼페이우스가 갖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전쟁 없는 휴전을 자축하며 파티를 열고 진탕 마셨습니다. 이때 한 병사가 폼페이우스의 음모를 폭로했습니다. 그 음모는 '삼두의 암살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폼페이우스의 음모는 무산되고 그는 떠났습니다.
안토니우스가 아내 옥타비아와 아테네를 떠나자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는 레피두스와 합세하여 폼페이우스를 쳤습니다. 그후 옥타비아누스는 레피두스를 반역자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그의 영토와 소유물을 몰수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안토니우스는 화가 나서 공개적으로 옥타비아누스를 비난했습니다. 깜짝 놀란 올리비아는 오빠와 갈등하면 자신이 떠날 수 있음을 설명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를 평화 사절로 로마로 보내고 자신은 전쟁 준비를 했습니다. 측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상전을 벌이기로 계획했습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불러 연합해서 옥타비아누스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안토니우스는 대패했고 클레오파트라는 함대를 타고 도망쳤습니다.
안토니우스는 패전 이유를 클레오파트라에게로 돌리고 비난하다 곧 그녀와 화해했습니다. 두 사람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안토니우스가 이집트 지역에 주둔할 것을 요청했지만 옥타비아누스는 허락하지 않고 클레오파트라에게 애인을 배반하라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 메시지를 받고 클레오파트라가 고민하는 것을 안 안토니우스는 화를 내고 또 사과하다 화해했습니다.
이 과정을 보던 안토니우스의 충신 에노바르부스는 실망하고 카이사르에게 망명했습니다. 이 와중에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를 이겼습니다. 그는 충신의 배신을 늦게 알고 아파하며 부하의 짐을 챙겨 보내 주고 클레오파트라와 승리 축하파티를 했습니다. 에노바르부스는 후회하며 자살했습니다.
다음날 해상전에서는 안토니우스가 대패했습니다. 도피한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를 눈치챈 클레오파트라는 숨어 살면서 자신이 자살했다는 소문을 퍼뜨립니다. 이 소문을 들은 안토니우스는 슬픔에 젖어 병사에게 죽여 주기를 부탁했지만, 그 병사는 오히려 자신이 자살했습니다. 안토니우스는 자결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크게 다쳤습니다. 안토니우스는 부상을 입고 클레오파트라에게 옮겨지고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했고 그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파악한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는 맘으로 포로와 다름없는 클레오파트라를 로마로 데려가려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클레오파트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독사로 자신의 가슴을 물게 하여 자살했습니다.
그녀의 시신을 본 카이사르는 그녀의 죽음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참으로 훌륭한 최후로구나 여왕답게 자신의 길을 갔구나."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의 장례식을 정중하게 치러주고 그녀를 안토니우스 곁에 묻어 줄 것을 특별하게 명령을 하고 퇴장하였습니다.
이상은 거칠게 간추린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입니다. 작가는 로마의 서글픈 역사의 한 장면을 들어 인간의 여러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첫째 사랑을 믿는 어리석음입니다. 온 로마의 존경을 받던 장군이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하여 권력과 명성 그리고 조국의 평화도 버립니다.
둘째, 권력을 모르는 어리석음입니다. 안토니우스와 그의 친구들은 권력을 위해 배신과 투쟁을 서슴지 않습니다. 권력을 향한 욕망이 자신을 죽이는 칼이 됩니다. 셋째는 인생의 유한함을 모르는 어리석음입니다. 권력도 미모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 모두 어리석은 군상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