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필라델피아로 유학을 와 8년간 신학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달랑 $50을 미니멈 밸런스로 은행 어카운트에 남겨두고 3개월을 버틴 적도 있었고, 크레딧카드로 페이한 학비를 갚기 위해 아내가 아이들 셋을 데리고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어간에 돈에 관한 두 번의 시험이 있었는데, 한 번은 노트북 컴퓨터를 사고 $ 340 리베이트를 받을 때였습니다. 컴퓨터를 1대 샀으니 $340짜리 체크를 한 장 받았어야 했는데, 당시 Staples 사의 실수로 두개의 check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1이 아까웠던 시절, 뱅크에 있던 전 재산 $50의 거의 7배에 가까운 $ 340은 제게 큰 시험이었습니다. 그 체크를 찢어버리는데, 1주가 넘는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한 번은 저녁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길 가에 주차를 하는데, 차 옆에 떨어져 있던 $5,000을 주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학비때문에 새벽 2시까지 건물 청소를 하고 있던 제게 $5,000은 정말 큰 돈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혹 하나님이 주신 건 아닌가?" 다행히, 하나님께서 돈 잃어버린 사람을 빨리 만나게 해주셔서, 돈다발을 든 채 커져만 가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잠깐이라도 시험에 들었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달아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목사가 되겠다고 헌신한 사람이 남의 돈에 마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무엇이 중한 것인지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돈으로 학위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삶에는 무엇이 중합니까? 보다 영원한 것을 붙잡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영화 '곡성'에서 어느 아역 배우가 남긴 명대사입니다. 외지인에게 험한 꼴을 당한 자신의 속도 모르고 이것 저것 캐묻고 있는 아버지가 하도 답답해서, 어린 딸이 욕설과 함께 옹골차게 던진 한 마디입니다. 이 대사는 후에 많은 광고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차용되면서 한 세대를 특징짓는 '세태어'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정말 뭣이 중한 지를 모르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창19:17에 보시면 죄악이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롯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하지만 롯의 아내는 그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겨,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해서 소금 망부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보다 더욱 중헌 것이 있음을 기억하십시다. 다시 오마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붙잡고 거룩하고 순결한 신부로 예수님을 기다리는 교회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치술령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던 한 여인의 마음이 오늘 우리들의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