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Photo :기독일보) 시애틀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히브리민족의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바로왕의 명령 따라 나일 강에 버려진 모세는 공주의 불쌍히 여김에 아들로 삼아 친어머니 요게벳을 유모로 하여 히브리 정신교육을 받으며 40년을 성장합니다, 그런데 열정을 가지고 민족을 구원해 보겠다고 열정을 가지고 힘을 쓰다 결국은 살인자가 되어 바로의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칩니다.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으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를 통해서 2종류의 불을 보게 됩니다. 동물적인 열정의 불과 영적인 하나님의 불입니다. 열정의 불은 나로부터 나오는 불입니다. 그래서 나를 태우고, 이웃을 태울 수 있는 무척이나 위험한 불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불은 나도 살리고, 이웃도 살립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때 임한 불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임함으로, 모두가 다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불이 되었습니다. 이 불은 타는데, 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물적인 열정의 불은 탈진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은 변함없이 타오릅니다. 참된 신앙은 변함없음이 없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는 것이고, 부패를 방지하는 세상의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불은 변함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불을 받는 방법은? 먼저 신을 벗는 겁니다. 사람들을 판단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신발을 보면 직업을 알고, 학벌과 배경, 외모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신발을 벗으라는 말은 판단을 중지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는 것은 지나친 우월감과 지나친 열등감입니다. 40세의 모세는 왕궁에서 왕자로 교육과 자신의 젊음과 의욕으로 엄청난 우월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월감의 모세는 쓰임받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80세의 모세도 광야에서 집이 없음은 물론 처가살이와 자신의 늙음에서 희망이 없음으로 열등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열등감의 모세도 쓰임받기 힘이 듭니다. 여기서 신발 벗으라는 말은 우월감과 열등감 모두 벗어 던져 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우월감의 왕궁의 사람이거나. 열등감의 광야의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연결된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이 쓰임을 받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는 곳입니다. 우월감의 사람을 키우는 것도. 열등감의 사람을 키우는 곳도 아닙니다. 맨발로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으로 서는 사람을 키우는 곳입니다. 그러면 어떤 조건에도 쓰임을 받게 됩니다. 모세의 별명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다가 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람 조건 그만 바라보고. 신발 벗어 던져버려야 합니다. 그가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