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 불교나 무속 환생론 주된 내세관 삼아
대중문화 콘텐츠 자주 활용되는 이유, 친숙해서
일본 신토, 자연물과 사물 자체 깃든 정령 중시
기독교적 내세관 관심과 신뢰, 점점 약해진 방증
이번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jtbc 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세 번째 분석합니다. 산경(山景) 작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방영중인 이 금토일 드라마에는 배우 송중기(윤현우, 진도준 1인 2역)를 비롯해 이성민(진양철), 신현빈(서민영), 윤제문(진영기), 김정난(손정래), 조한철(진동기), 박지현(모현민), 서재희(유지나), 김영재(진윤기), 정혜영(이해인), 김현(이필옥), 김신록(진화영), 김도현(최창제), 박혁권(오세현) 등이 대거 출연합니다.
◈한국의 환생론: 전통적 내세관인 환생이론의 영향력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설정과 서사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통쾌한 복수극 이면에 자리잡은 반재벌 정서와 권리지향적 정치의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한 가지 더 문제시될 수 있는 것은 '기억을 가진 환생'을 소재로 삼고 있는 장르소설 및 드라마로서, 일본식 종교성을 그 속에 적극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로부터 환생 이론은 동서양 양쪽의 종교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서구에서는 그리스 신화와 플라톤 철학에 의해, 동양에서는 힌두교와 불교를 통해 환생론이 인간 존재를 설명하는 중요한 종교적 가르침으로 자리잡아 왔다.
환생이론의 종교적 영향력은 기독교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한데, 특히 동양에서 더 그렇다. 서구에서는 기독교 내세관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한 덕분에, 환생에 대한 믿음이 상당부분 흐려진 것이 사실이다.
물론 20세기 들어와서도 사이언톨로지 같은 신흥종교가 플라톤 환생론을 기묘하게 비틀어 교세를 확장해 왔지만, 서구 대중들의 인식 전반에서 환생론은 그리 매력적인 내세관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반면 동양에서 환생은 아직까지도 인간의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를 설명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세속화와 무종교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을 비롯한 동양인들의 말과 생활 속에는 환생론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주변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라고 푸념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불교 환생론이 한국인의 사고와 문화에 깊게 배여들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세를 생각할 때도 은연중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우리 한국인들 가운데 부활과 심판, 영생과 영벌이라는 기독교적 내세관을 굳건하게 믿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불교의 환생론이나 애매한 형태의 무교(巫敎) 환생론을 주된 내세관으로 삼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경향은 나이가 들어 죽음에 가까워지는 이들에게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 가운데 환생에 관련된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만큼 대중의 내세관에 친숙하기에 공감과 인기를 쉽게 얻는 것이다.
환생론은 최근처럼 장르문학이 발전하기 전에도 여러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자주 소재로 활용되었다. <은행나무 침대>(1996), <번지점프를 하다>(2001) 같은 작품이 환생을 주된 소재로 담아냈고, 불교사상을 기반으로 삼아 서사를 전개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역시 헤어나올 수 없는 윤회의 굴레 속 환생을 주제로 선정한다.
▲환생을 주요 소재로 삼은 영화 <은행나무 침대>(1996). |
다만, 최근 유행하는 장르소설과 이를 기반으로 미디어 믹스가 이루어진 드라마, 영화 속에 묘사된 환생은 기존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보여준 환생과는 그 모습이 크게 다르다.
환생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통상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 동시에 각자의 삶에 고난과 애환이 깃든 연원을 설명해주는 것이었던 데 비해, 최근 장르문학과 장르문학 기반 영화 및 드라마에서의 환생은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슬립을 수반하면서 전생의 기억이나 재능을 온전히 재활용할 수 있는 극적인 인생역전 기회로 인식된다. <재벌집 막내아들> 역시 환생에 대한 이런 표현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일본의 환생론: 신토 특유의 정령신앙에 기댄 새로운 유형의 환생론
이 새로운 유형의 환생에 대한 인식이 장르문학 속에 자리잡게 된 데는 일본의 장르소설이라 할 수 있는 라이트노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통상 일본 작가들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만들 때 서구의 콘텐츠를 가져와 일본식으로 변형해 인기작을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1970년대를 기점으로 차원이동 소재 콘텐츠가 일본에서 조금씩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1976년 제작된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폴>은 루이스 캐럴의 명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온 '신비한 세계로의 여행'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1990년대에는 <신비의 세계 엘하자드>(1995)와 <천공의 에스카플로네>(1996) 등이 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고등학생들의 이세계 모험기라는 소재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애니메이션에서 인기를 얻은 차원이동 소재는 그대로 일본의 라이트노벨로 옮겨져 왔는데, 이 차원이동 소재 소설들 가운데 새로운 형태의 소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로 전이될 때 원래의 몸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새로운 인간 혹은 생명체로 재탄생하는 작품들이 등장한 것이다.
일본에서 이런 소재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의 전통종교 신토는 고유의 애니미즘, 즉 정령사상에다 불교의 환생론을 융합시킨 내세관을 가르친다.
한국의 무교가 통상 샤머니즘, 즉 혼령과 접신하는 샤먼의 역할을 중시하는 데 비해, 일본의 신토는 샤먼보다 인간을 비롯한 자연물과 사물 자체에 깃든 정령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토에서 정령은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다. 산이나 바다, 강과 같은 거대한 자연물부터 인간이나 동물을 포함한 생물들, 그리고 나무나 풀 같은 식물로부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물에도 정령들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것이 신토의 영혼론이다.
그리고 이 영혼은 생물의 죽음이나 사물의 파괴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윤회 혹은 환생의 과정을 거쳐 다른 생명체 혹은 사물에 새롭게 깃드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일본의 정령사상을 대중문화 작품으로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아티스트로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지목할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 속에 그려진 자연의 정령들, 신토의 정령사상을 반영한 장면이다. |
쉽게 말해 최근 일본 라이트노벨과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한국 장르문학 속의 환생은 불교적 입장에서 환생을 버거운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실망스러운 현생의 삶을 벗어나 보다 나은 형태의 삶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애니미즘적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원으로는 불교의 환생론과는 구별되는 일본 신토의 정령신앙을 지목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 고유의 정령신앙을 기반으로 미화(美化)된 환생에 대한 인식은 현실 인식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기독교적으로 봤을 때 자기 삶의 역사 전체에 대한 책임을 지는 내세관 정착에도 장애물로 작용한다.
애초 윤회와 환생을 전통적인 내세관으로 수용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서 새롭게 재해석된 인생역전을 위한 환생이라는 소재는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온다.
물론 드라마 한 편으로 인간의 영혼이나 내세에 대한 사고관이 뒤바뀌는 일은 없겠지만, 문제는 최근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 그려진 환생의 모습이 인기를 얻으면 얻을수록, 단 한 차례 허락된 일생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과 부활을 위해 진력(盡力)하는 삶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급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근 <어게인 마이 라이프>나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작품들이 대중으로부터 큰 호응과 인기를 얻는 현상은, 바꿔 말하자면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내세관에 대한 관심이나 신뢰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일전 국내에서 기독교 전도가 왕성하게 이루어지던 시절 크게 약화됐던 환생에 대한 믿음이 대중문화가 부여하는 매력을 힘입어 되살아나는 현재 상황은, 기독교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크게 아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환생을 인생역전을 위한 제2의 기회로 묘사하는 <재벌집 막내아들>. 일본식 정령신앙을 현대화한 라이트노벨의 영향이 한국 장르소설을 거쳐 드라마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