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씀하는 종말론은 균형과 종합입니다. 이단은 한 가지만을 집중해서 단편적으로 강조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따르게 되므로, 결국은 속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믿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믿는 사람이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단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자기 좋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는 말씀만 전합니다. 듣고 싶은 말이 말씀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전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으면서 하는 말이 아이들이 좋아해서, 남편과 아내가 좋아해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이단성이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자기 코드만 찾는 사람은 가짜라고 말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 시대에는 정보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가짜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짜 말씀을 듣고 자기가 깨질 기회가 별로 없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 채울 말씀 찾아다니니 변화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골라서 하는 자를 경계해야 한다 말씀합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는 말씀처럼, 듣고 이단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원하는 욕심을 따라가는 것이 이단으로 탐심은 우상숭배인 겁니다, 욕심을 버리고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미래는 결코 갑자기 오지 않는다는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 비유를 배우라.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깝다."말씀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봄이 짧습니다. 느끼는 순간 여름이 옵니다. 시애틀의 가을도 그렇습니다. 에어컨 끄고 2주 지나면 히터를 켜야 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미래는 물론, 자녀의 미래도 결단코 갑자기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편한 것을 찾고, 받은 은혜를 간식 먹듯이 뒤집습니다. 말씀만을 따르되,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 살 길입니다. 그런데 자기 욕심을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가장이 성실한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낮선 목사 집회에 가서 눈물 몇 방울 흘리는 발작적 행동이 믿음이 아닙니다. 꾸준하고 성실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아픔과 시련과 고통이라는 종말은 예고 없이, 느닷없이, 올 수도 있습니다. 파수꾼같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냥 때를 기다리거나, 기회주의자 같이 옆을 기웃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주어진 일과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종들에게 권한과 사무를 맡기고 갔다면, 종 된 우리는 예배의 사명을 다하고, 섬김의 사명을 다하고, 선교의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게 성실하게 깨어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