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디아스포라를 말할 때, 우리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해 가는데 하나님은 두 민족을 선택하셨다. 유대인과 한민족이다. 축구경기로 예를 들면, 전반전에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쓰임 받았다면, 이제 후반전엔 한민족 디아스포라가 쓰임 받을 차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민족이 선택되었음을 알 수 있는가?
이를 위해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 있었던 성령강림 대 부흥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사건은 오순절 예루살렘에 임했던 성령의 임재와 동일한 사건이었다. 오순절 성령세례의 특징 중 하나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명의 제자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아주 놀라운 증언이다. 그런데 평양 대부흥이 이런 놀라운 회개의 사건이었다.
사무엘 마펫 선교사 증언에 의하면, 평양은 기생이 가장 많아 음란한 곳이었고 폭력배들이 들끓는 타락한 도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평양이야말로 교회를 세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선교부에 보고한다. 그런데 성령임재를 경험한 평양시는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흐느끼는 모습이 초상집과 같았다 한다. 기생집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온순해지기 시작했다. 주일이면 성수주일을 지키기 위해 시내 상점들이 문을 닫고 장사를 하지 않았다. 평양의 거상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어서 예수를 믿지 않던 상인조차 팔 물건을 공급받지 못해 문을 닫아야 했단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지금 세계에 두 강대국이 등장하고 있다. 하나는 군사대국 일본, 하나는 기독교대국 조선이다" 라고 보도했다. 뉴욕트리뷴은 "지금 기독교가 조선의 품격을 바꿔 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주일 아침이면 평양시 280개 교회에서 울려 펴지는 종소리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한다. 장대현교회 출신 성도의 말에 의하면, 당시 복음을 듣고 전도 받아 장대현교회를 출석했던 성도의 수가 1 천명이 넘었다 한다. 이 증언은 우리를 놀랍게 한다. 그래서 이것을 목격한 당시 선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평양을 가리켜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칭한 것이다.
이것이 우연일까? 우연이 아닌 복음전도를 위해 필수적 사건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약속한 성령이 오시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복음전도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성령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아야 한다. 초기복음이 유대인사회에서 이방인사회로 전해지기 위해 예루살렘 오순절 성령세례가 반드시 필요했던 사건이라면, 이제 복음이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를 지나 땅끝인 예루살렘으로 다시 전해지기 위해선 평양 대부흥의 성령세례 사건이 필수적인 사건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이 한민족을 선택하셨다는 증거다.
복음은 디아스포라 유대인 바울을 통해 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로 흘러간다. 그리고 유럽으로 전해졌고, 특히 영국에서 미국 땅으로 옮겨졌다. 영국 프리머스 항을 출발한 청교도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프리머스 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교회를 세웠다. 미국인들은 조상들의 얼을 기리기 위해 프리머스항 근처에 큰 기념비(National Monument to the Forefathers)를 세웠다. 이 기념비는 한 여성입상과 그 입상을 받들고 있으며 동서남북을 향한 네개의 좌상으로 이루어졌다. 여성입상 발취에 '신앙(Faith)'이란 글귀가 선명하다. 그리고 좌상의 발취에 교육(Education), 자유(Liberty), 도덕(Morality), 법(Law)이란 글귀가 쓰여있다.
미국 최초 이민자 청교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신앙을 기초로 미국을 건국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미국의 건국이념은 점차 세속화되었다. 16 대 미국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이를 새롭게 하길 원했다. 링컨대통령은 성경에서 비롯된 인권사상에 맞지 않는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한다.
그의 마음은 1863년 게티즈버그 연설문에 잘 나타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링컨 대통령은 미국남북전쟁이 끝나기 전 1865년 암살 당하고 만다. 그런데 이것이 우연일까? 링컨대통령이 암살 당한 후 1년 뒤, 1866년 최초로 중국말 성경이 조선에 전해졌다. 미국상선 제너럴셔호먼호에 통역관으로 승선하여 평양에 입항한 토마스선교사(Robert J. Thomas)는 제대로 선교활동도 해보지 못하고 순교 당했지만, 그가 전달한 중국말 성경은 능력을 발휘했다.
'야소 (예수의 조선말)을 믿으라'고 외치며 박춘권에게 건네진 중국말 성경은 그 곁에서 순교현장을 지켜보던 소년 최치량에 의해 영문주사(營門主事) 박영식에게 전달된다. 박영식은 성경을 받아 자기 집 도배지로 사용했는데 박영식이 훗날 벽지에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훗날 최치량은 박영식의 집을 사서 여관으로 경영했는데 미국 북장로교회 평양 선교사로 부임한 사무엘 마펫이 그곳에 우연히 묵으면서 그곳에서 평양 최초의 교회 '널다리골교회'를 개척한다. 이 널다리골교회는 훗날 1907년 평양 대부흥의 현장이었던 '장대현교회'로 불려진다.
너무 극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복음이 소아시아, 유럽, 미국을 지나 태평양을 넘어 이렇게 한국땅에 도착했는데 그복음이 평양 대부흥의 본거지인 장대현교회의 모체 '널다리골교회'를 개척하게하고 평양의 대부흥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참으로 경의롭다.
한민족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은 이것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조선땅에 전해진 성경과 기독서적을 읽으면서 기독교로 개종한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통해 민주주의 3대 기본사상 '개인인격존중사상,' '자유사상,' '만민평등사상'을 깨닫는다.
한성감옥에서 1903년 '신학월보'에 기고한 그의 글은 다음과 같다. "대한 사람의 새 물줄기는 예수교회라...정치는 항상 교회 본의로서 딸려나는 고로 교회에서 감화한 사람이 많이 생길수록 정치의 근본이 스스로 바로 잡히나니, 이럼으로 교화로써 나라를 변혁하는 것이 제일 순편(順便)하고 순리된 바로다...썩은 백성 위에 맑은 정부가 어찌 일을 할 수 있으리오. 반드시 백성을 감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한 후에야 정부가 스스로 맑아질지니 이 어찌 교회가 정부의 근원이 아니리요." 훗날 프린스턴에 유학한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으로서 성경에 나타난 민주주의 3대 기본사상을 기초로 대한민국을 건국한다. 이승만대통령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처럼, 성경 위에 나라를 세우려 했던 것이다.
1866년 토마스선교사의 순교, 최치량이 주운 중국어 성경의 행보, 1903년 이승만의 회심과 깨우침, 1907년 평양 대부흥,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한민족을 택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으로 해석하지 않고는 도저히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