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 이재근)가 3일 오후 온라인 '줌'(zoom)으로 제406회 학술발표회를 개최한 가운데, '1959년 한국 장로교 분열에 대한 미국 선교사와 미국 복음주의권 반응 연구'라는 제목의 정병준 교수(서울장신대) 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정 교수는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만 1959년 한국장로교회 분열의 원인이 내부적으로는 박형룡 박사의 삼천만환 사건, 경기노회 총대 선출 사건, WCC와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찬반 갈등이었고, 외부적으로는 선교사들의 신학과 재정적 지원이라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1959년 한국장로교 분열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 선교사들의 역할과 입장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약하다"는 그는 그나마 이와 관련된 일부 연구들에서도 선교사들의 입장을 읽을 수 있는 일차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즉, 이들 연구들이 한국에 있던 선교사들과 미국 복음주의권이 에큐메니칼 측을 지지한 것을 비판하지만, 이 같은 비판이 당시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53년 9월 박형룡이 총회신학교 교장으로 임명될 때, 북장로회 대표 아담스(Edward Adams, 안두화)는 박형룡 지지 세력이 총회신학교를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면서 반대표를 행사했다"며 "한국장로교총회가 고려신학교와 한국신학교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신앙동지회'는 박형룡을 고문으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NAE)로 재탄생되었고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었다"고 했다.
정 교수는 "1959년 한국장로교 분열 과정에서 선교사들이 본국의 지시를 따라 에큐메니칼 노선을 지원해 분열을 더 가속화시켰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선교사의 어떤 글에도 보수신학을 문제 삼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며 "그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장로교회의 보수신학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박형룡을 도와서 조선신학교를 축출하는데 협력했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한국의 NAE 측도 한국의 목회자와 선교사의 신학을 공격하는 경우는 없었다"며 "이들의 공격 대상은 늘 바다 건너 제네바의 WCC(세계교회협의회)였고 미국의 N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이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연합장로회 선교사들이 NAE 측을 문제로 삼았던 것은 삼천만환 사건, 선교사 사인 위조, 선교비 스캔들과 같은 재정 스캔들, 매킨타이어 노선을 따라 반WCC 운동을 교권 투쟁에 이용한 것, 본국 교회의 명칭 변경 승인 반대운동을 벌인 것 등"이라며 "NAE 지도자들도 삼천만환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선교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미연합장로회의 선교 정책이 에큐메니칼 노선으로 선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선교사가 에큐메니칼 측을 편든 것은 아니"라고 했다.
또 "남장로회는 특별히 박형룡을 지지했고, 그 주류는 NAE 신학을 지지했다. 심지어 매킨타이어 신학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남장로회는 호남 NAE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그로인해 미연합장로회와 갈등 관계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남장로회 선교사들이 본국 선교부의 영향으로 에큐메니칼 측을 편들었다는 말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정 교수는 "남장로회는 한국 NAE의 비윤리적 측면 때문에 신학적 변호를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남장로회는 갈라진 총회의 화해와 재연합운동을 전개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 NAE 안에는 반에큐메니칼 노선과 중립적인 노선이 공존했다. 미국 NAE는 1950년대 초 한국교회 안에 반WCC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마 킬보른, 조지 포드 같은 미국 NAE 운동의 지도자들이 연합장로회 선교사들의 항의에 수긍해 한국 NAE와 관계 단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국 NAE의 투쟁이 보수신학을 위한 싸움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통보수 수호를 외쳤지만 설득력이 없었다"고 했다.
한편, 이날 학술발표회에선 정 교수 외에 이재근 교수(광신대)가 '김제 만경교회의 설립과 성장'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했다. 정 교수 발표에 대한 논찬은 김일환 서울장신대 미래목회와미래교육연구소 연구원이, 이 교수 발표에 대한 논찬은 송현강 한남대 인돈학술원 연구위원이 각각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