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Photo : 기독일보) 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2)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마음에 아무런 부담도 없이 즐기는 캠핑이나 한가한 소풍의 길이 아니다. 삼킬 자를 찾아서 기회를 노리는 마귀의 계략에 대처해야 하고 그와의 전쟁을 기피할 수 없다. 이른 바 "형통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들의 말처럼 모든 것이 잘되어 만사형통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갈등이 있고 좌절이 있으며 또한 종종 실패의 잔을 마쳐야 한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십자가의 성숙한 군사가 필요하다.

머리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구원의 교리에 대해서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무기를 많이 가져도 치열한 전쟁터에서는 생명이 위험하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녹이 슬거나 사용법을 몰라서 적이 공격해 올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으면 결국 패배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감언이설로 꾀는 이단들의 접근에 대해서 무방비가 되기 쉽다.

어린 아이는 전쟁에 내어 보내지 않는 것처럼 신앙적으로 미숙한 자는 보호가 필요할 뿐이며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강하고 훈련된 성도가 되어야 한다. 하루 아침에 강력한 군사가 될 수는 없다. 군인들이 오랫동안 강한 훈련을 받은 후에야 실전에 임하는 것처럼 십자가의 군사도 오랜 기간에 걸쳐서 단련과 훈계를 받아야 한다.

3)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일이 시급하다.

모든 족속을 예수의 제자로 삼는 것은 성도라면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즉 단순히 믿는 자로 삼는 것을 넘어서 그들을 헌신된 제자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되는 것이 주님의 지상 명령의 목적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믿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구비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의 세대"가 어떻게 이어지겠는가?

어떤 사람을 주의 제자로 삼으려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성숙해야 한다. 미숙자가 헌신된 제자를 삼을 수 없으며 또한 영적으로 어린 사람이 십자가 군사를 키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범은 그 누구보다도 태권도에 고수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군대에서 일반 사병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조교라는 위치가 있다. 그는 모든 훈련 과정을 잘 알며 또한 실제로 그 내용을 스스로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주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도 영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4)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세워야 한다.

왜 한국의 많은 교회들 가운데 갈등과 분열이 자주 발생하는가? 왜 교회가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비난을 받는가? 그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른 바 교회의 지도자라고 알려진 사람들의 삶이 신앙과는 별개처럼 보이고 결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도 누구보다도 성숙한 자라고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언변이 좋고 행정적 수완이 탁월하여 교회라는 단체를 잘 운영하는 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유명한 목사의 부친이 아들 목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너는 꽤 유명하다고 하는데 존경도 받느냐?" 대단히 뼈가 있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교회는 누가 세우는가? 물론 주 예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지만 현실적으로는 목사와 장로 등의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일부 교회의 지도자들은 제대로 신앙 훈련과 교육을 받지도 않고 다만 교회에서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띄도록 봉사하거나 남들보다 헌금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지도자로 세우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즉 신앙적으로 모범이 되고 칭찬받을 만하기 때문에 세운 것이 아니라 세상 기준에 따라 세워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교회에 일꾼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모로 자격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지도자의 위치에 놓으면 변할 것이라는 착각으로 결격자를 장로나 권사나 집사로 세우는 것을 본다. 미국에 있는 많은 한인 교회들이 끊임없이 여러 가지 갈등에 휘몰리고 있다. 우선 목사의 비리나 불성실이 문제가 되고 또한 영적으로 미숙한 당회원들의 "세상적인 운영 방침"같은 것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땅에 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5) 이 시대에 각성과 개혁과 부흥이 요구된다.

아프리카 일부 나라와 남미의 몇 나라를 제외하면 근래에 와서 세계의 기독교는 성장을 멈추거나 쇠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오순절 계통의 교회가 가장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렇지만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후기 기독교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회가 힘을 잃고 영향력을 상실했다. 기독교가 왕성할 때에 건축한 예배당 건물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것을 외형뿐이고 텅 빈 경우가 많아서 마치 오래 된 박물관과도 같아 보인다.

한때 가장 강력한 복음적 영향을 끼치던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전도자를 세운 미국에서도 교회들이 전보다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이슬람 세력의 급속한 확장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많은 문제에 휩쓸리고 있다. 지금의 속도로 이슬람 세력이 계속해서 확장된다면 아마 20-30 년이 지나면 나라가 온전히 이슬람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야 말로 정말 진정한 각성과 부흥이 요구되는 세대가 되었다.

강력한 전도자인 레오나드 레이브힐 박사는 유황불로 멸망한 "소돔성에는 성경이 없었다"고 외쳤지만 이 시대에는 성경책이 무수히 많고 신학교도 많은데 왜 기독교는 계속해서 하향세를 보이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교회 강단에서 순전하고 강력한 복음이 사라지고 차디찬 신학과 무미건조한 철학 같은 이론들이 대체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회개와 어린 아이와 같이 순전한 믿음이 희미해지고 다만 신학 논쟁과 교회 정치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에 삶에 변화가 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어 부패한 세상에 들어가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세상이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를 세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시대에 목숨을 내걸고 "하나님과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는 영적인 사람들이 더 요구되는 것이다 (계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