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 칼럼니스트인 조셉 마테라(Joseph Mattera) 박사가 “많은 제도권 교회가 놓치는 10가지”에 대해 소개했다.

다음은 교단 중심 체제가 있기 전, 사도행전적 교회가 지녔던 10가지 전통이다.

1.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정식 안수 절차를 밟는 입학을 하지 않았다.

구약에는 제사장 직분을 묘사하는 형식적인 의식이 있다(출 28-29). 신약에서는 원래 12명을 예수께서 사도로서 섬기도록 위임한 것을 본다(막 3:13-15, 눅 6:12-13). 나는 제자들이 부르심에 응답한 후, 그분과 함께 걸으며 교훈과 가르침을 받는 동안, 예수께서 그들에게 손을 얹었을 것으로 짐작한다(눅 10:17-20). 또한 안디옥교회의 장로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하고 사도의 직분을 하게 했다(행13:1-2). 교회를 세우는 바울의 방식은 사람들을 사역에 맞게 구별하여 안수했다(행 14:22-35, 딤전 4:14).

이 모든 경우, 목사 안수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예수 중심의 공동체 안에서 영적 지도자와 동행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실천과 성령의 증거에 의해 소명을 입증한 뒤 사도직을 위임받았다. 따라서 교회 감독자로 섬기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목회자를 입학시키는 현재의 관행은 초기 원초주의(early primitivism)의 표준이 아니다.

2.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는 어떠한 분리도 없었다.

1세기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 직분에 참여했다(벧전 2:8-9). 교회 장소와 일터, 그리고 소위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는 분리가 없었다. 또한, 대부분의 감독자들은 결혼했으며 그들의 생물학적 가정을 관리하는 능력에 기초하여 심사를 받았다(딤전 3:1-12). 바울은 영적 지도자로서 이중 직업을 가졌고, 심지어 강당을 사용해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행 18:3, 행 19:9).

3. 사역을 위해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주신 바 되었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예수운동을 요엘의 마지막 날의 예언과 동일시했다. 그 예언은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예언하고, 환상과 꿈을 경험하게 했다(막 2:17~18). 따라서 복음 전파를 진전시키기 위해 성령의 자발적인 뜻에 초점을 맞췄다. 오늘날, 교회 예배는 안수받은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사역에서 배제하는, 너무 뻔한 예배 형식과 관례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대신 정식 훈련이나 성별 및 연령과 상관없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역을 배출해야 한다.

4. 교회 운동의 각 세대는 사도적이어야 한다.

교회가 끊임없이 확장되는 선교 운동으로 남으려면, 사도적 은사를 지닌 지도자들이 교단과 네트워크의 지휘를 맡아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12명의 목사가 아닌 12사도를 택하여 운동을 시작하신 이유다. 역사적으로 많은 운동은 재능있는 행정가를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임명한다. 이러한 병목 현상이 확대되면 관례화(routinization)를 초래한다.

5.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했다.

신약에서 사도들은 다른 사도와 장로에게만이 아닌, 회중과 교회 공동체에 편지를 썼다(고전 1:1-2). 따라서 그들은 모든 신자가 성령과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기대했다(히 5:11-14, 요 2:20-27). 불행하게도, 로마 가톨릭과 같은 일부 역사적 교파들은 교회 분열을 막기 위해 소위 평신도는 성경을 읽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몇몇 역사에 남을만한 개신교 기독교인과 복음주의자들도 마치 자신은 성경에 대한 헌신에서 제외된 듯이, 성경 연구와 해석을 목사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 위배된다(시편 1, 딤전 3:15-16).

6. 우리는 죄를 서로 고백해야 한다.

일부 유서 깊은 교회는 배정받은 사제에게만 죄를 고백할 것을 허락한다. 신약은 모든 신자들이 서로 죄를 고백하여 치유될 수 있도록 권면한다(약 5:16).

7. 기독교는 판에 박힌 일상이 아닌 삶의 방식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라 하셨다(요 14:6절). 초대 교회는 초창기에 ‘삶의 방식’으로 묘사되었다(행 5:20, 9:2, 19:23).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단순히 주일과 특별한 휴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정의된 종교로 본다. 이는 종종 그들의 일상과 통합되지 않는, 행사가 되어 버렸다.

8. 기독교는 건물로 정의되거나 국한되지 않는다.

본래의 교회는 박해를 받았고, 종종 집과 지하 묘지에서 비밀리에 만나야만 했다. 이제는 기독교가 예배를 드리는 건물이 ‘교회’가 되어 문화에서 너무나 소외되었다. 신앙은 일요일에 한 건물에서 1시간 예배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9. 감독직은 사도직을 포괄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유서 깊은 교회들은 감독의 직분이 초대교회 사도들의 후계자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많은 교회는 훌륭한 행정가를 감독으로 뽑지만, 사도직에 걸맞는 선교적 열정과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는 신자들이 복음적 열정과 사역 능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은혜의 수준을 제한한다(엡 4:7-12).

10. 하나님께는 손자가 없다.

신약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위로부터 태어나고, 예수를 인격적으로 영접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요 1:12-13, 3:3-8). 제도적 교회에서는 한 사람이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채 문화적 기독교인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는 불운하게도, 하나님께는 손자가 없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당신의 아들이 되기를 요구하신다(롬 8:14-16).

이러한 성경적 원칙을 지키면 앞으로 교회는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우리 백성과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빚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