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수 목사
(Photo : 기독일보) 이준수 목사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헬라어에서는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입니다. 크로노스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을 뜻합니다.

즉, 아침에 해가 떠서 저녁에 지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흐르며,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늙어 죽는 생로병사의 시간이 크로노스인데 반해, 카이로스는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 시간, 다시 말해 우리가 특정한 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한다거나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하거나 아이를 갖는 등 우리 인생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 일어난 시간을 가리킵니다.

또 신학적으로는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사건, 그리고 이런 부활의 예수님을 내가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과 영생을 보장받고 그분의 능력과 사랑 안에 거하며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인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발생하는 사건들을 기록한 '역사'에서도 비슷한 구분이 있습니다. 독일어에서는 역사를 가리키는 두 가지 단어가 있는데, 바로 '히스토리에(Historie)'와 '게쉬크테(Geschichte)' 입니다. 히스토리에가 '0000년도엔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났다'와 같이 단순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라면, 게쉬크테는 과거의 수많은 단순 사건들 중에 현재의 기준으로 봤을 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서기 29년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유대 청년이 십자가형을 당하였다"라고 단순하게 기록한 것이 히스토리에인 반면, "그 예수라는 청년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처럼 어떤 의미를 부여해 주관적으로 해석한 것이 바로 게쉬크테인 것입니다

따라서 크로노스의 시간은 인간의 힘으로 붙잡을 수도, 관리할 수도 없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자기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 즉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 남들이 할 수 없는 무수한 가치와 효과를 창출해 낼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항상 그 사람과 함께 하시고 그의 시간을 올바르게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장16절에서 바울 사도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세월'이란 단어의 헬라어 원문이 바로 카이로스이며, "세월을 아끼라"라는 말도 평범한 크로노스의 일상 속에서 카이로스, 즉 '하나님의 시간'을 발견하고 가치 있게 사용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한치의 낭비 없이 소중히 아끼고 지혜롭게 활용할 때, 현재와 같이 코비드가 전세계적으로 창궐해 우리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고 일상생활이 크게 제약당하는 악하고 어려운 시간도 하나님의 선과 능력이 나타나는 위대한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시간은 유한하고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이 유한하고 동일한 시간을 아끼고 가지 있게 잘 활용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고 약함 속의 강함, 고난 중의 영광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2022년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글 | 이준수 목사 (남가주밀알선교단 영성문화사역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