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 들어서면 으레 생각나는 게 있다. 조상의 얼을 되살린다는 구실로 공휴일이 하루 건너 포진해 있다는 사실과 시월의 마지막 밤이 지나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대중가요 한 곡이 떠오른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은 바리톤 가수의 육성에 실려 한층 감미로운 계절로 우리를 초대한다. 시월은 열두 달 타임라인의 클라이막스요 한여름을 견뎌내고 맞이하는 결실과 풍요의 절정이다. 의미 충만한 시월의 엔딩을 오백 년 전 독일 땅에선 어떻게 마무리했던가.

베를린에서 라이프치히를 향해 남서쪽으로 한 시간 남짓 달리면 이르는 소도시 비텐베르크. 엘베 강변에 비텐베르크 성을 세우고 부속 교회를 지어 비텐베르크 대학에서는 대학교회로 사용한다. 하루에도 수차례 고백성사를 해야 성이 풀리던 루터는 교회 문이 닳도록 드나들었을 게다. 입구는 훗날 루터가 대자보를 써서 못질하기 좋도록 큼지막한 나무문으로 만들어둔다. 지금처럼 청동으로 되었다면 못 박을 일도 없고 교황과 맞설 일도 없으며 그 교회 바닥에 자신의 무덤이 들어설 일도 애당초 없었을 테다.

가뜩이나 못마땅한 교황들의 처신에 더해 레오10세의 면죄부 판매와 그 수익금의 용도 문제마저 불거진다. 교황과 대주교 사이의 커넥션에 의거, 독일 땅에서 거두어들인 돈다발의 태반은 교황청 앞으로 보내거나 대주교의 개인 은행 빚 상환으로 지출된다[1]. 1516년 루터는 설교를 통해 얼토당토한 면죄 행위를 몇 차례 비판한 바 있고 마지막 비판 설교도 공교롭게 만성절 전야의 할로윈 날이다. 소위 지성인의 전당 대학에서 강의하는 학자라면 저런 이슈를 놓고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듬해 시월의 마지막 날, 루터 교수는 망치와 못을 챙겨 길을 나선다. 평소 목회하던 시 교회 Stadt Kirche 대신 성 교회 Schloss Kirche 를 택한다. 기필코 일 저지르고 말겠다는 심보가 아니다. 양심선언이라 하기도 좀 그렇고 그저 금요일마다 신학자들끼리 토론하던 전통에 따라 차기 논쟁거리를 제공할 정도로 보면 되겠다.

본의 아니게 판이 커진다. 대자보 앞에 모여들기 시작하고, 시키지도 않은 누군가의 번역이 있더니, 보름 만에 독일 전역의 도시민이 쉬이 읽고, 70여 년 전 구텐베르크가 선보인 테크놀러지까지 가세하여 '성경의 땅끝'까지 전달되는 데는 한 달이 걸리지 않는다. 루터는 당황했으리라. 교황청에서 가만 있을 리 만무하다. 용서할 테니 철회하라는 기회가 주어지나 저항한다.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옳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다며 확고부동하게 선 채로 하나님께 도와달라 기도한다. 양측은 상대방을 향해 루비콘을 건너고야 만다.

< 면죄부의 권능과 효력에 관한 토론 >에서 알 수 있듯 95개 조항은 루터가 교황을 상대로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시사하지 않는다. 같은 글을 알브레히트와 요한 테첼[2]에게도 보내 토론을 제의하였고 학자나 성직자들이 사용하는 라틴어로 썼다는 점에서 토론을 염두에 두었음이 추측 가능하다. 이 글을 비텐베르크 성 교회 입구에 붙여 대학 동료들과 이참에 한번 논의해보자는 게 취지이고 글의 목적이다. 대중적 공감을 불러일으켜 전면전으로 나가려했다면 처음부터 독일어로 쓰고 '대동단결 투쟁'이라 타이틀을 걸었으리라. 쉽게 말해 대자보 하나 써 붙인 바, 뜻하지 않게 독일어로 번역돼 인쇄기술을 타고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을 뿐이다. 바울의 전도가 일사천리로 나아가게끔 미리 헬라제국이 언어를 통일해두고 로마제국이 도로를 만들어놓은 이유를 우리 크리스천은 알고 있지 않은가. 오만한 종교는 개혁으로 탈바꿈할 때를 맞은 게다.

루터가 먼저 포문을 연다. 교황은 직권과 교회법에서 부과한 형벌들 외에 어떤 형벌도 사하여 줄 의지나 권세가 없음을 지적한다(제5조). 죄가 하나님에 의해 사하여졌다고 선언하거나 직권에 맡겨진 죄를 사하는 정도만 인정한다(#6). 참회에 관한 교회법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적용하고 죽은 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음을 적시하여 연옥에서 구출해주겠다는 교황의 교만과 거짓을 들추어내기 시작한다(#8). 교회법의 형벌이 연옥까지 적용케 된 사유는 감독들이 잠잘 때 가라지들이 뿌려진 때문이라며 시대상황을 비유적으로 탓한다(#11). 형벌은 물론 연옥에서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면죄부 티켓 장사치들의 설교에 대해 오류를 지적하고 교황의 재테크인 면죄부를 본격 거론한다(#21). 교황권이나 면죄부가 아니라 중보기도로 연옥영혼을 구해낸다면 그건 아주 잘하는 일이라며 격려도 빠뜨리지 않는다(#26). 면죄부를 파는 측이나 그걸 구입하여 죄사함을 받으려는 양측 모두는 저주받을 거라며 쌍방과실로 판결한다(#32). 이 모든 것들은 결국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남을 선포하며(#35) 참된 그리스도인의 면모를 제시한다(#36,37). 그렇다고 교황의 면죄와 특별사면까지 무시하면 안 된다며 슬쩍 교황을 챙겨준다(#38). 면죄부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 여타 선한 행위 곧, 사랑의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판단하지 않게 설교해야 하고(#41) 면죄부 구입보다 차라리 가난한 자를 돕는 게 더 선한 행위임을 그리스도인에게 가르치도록 강조한다(#41-46).

이야기는 중반에 접어들어 강성 모드로 전환한다. 차라리 성당을 불태우라(#50), 속아서 구입한 사람들에게 성당을 팔아서라도 돌려주라(#51)까지 언급하다 급기야 (면죄부 판매 때문에 해야 할 말씀 설교를 못 할 경우는 그것이)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53), 교회의 참 보화에 대한 언급이 있고(#56-66) 면죄부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비할 바가 아님을 말한다(#68). 교황 문장의 십자가가 그리스도께서 매달리신 그 십자가와 동일 가치라 하는 것은 신성모독임을 적시한다(#79). 이처럼 그릇된 선포를 묵인하는 감독들과 사제들과 신학자들에게 책임을 물으며(#80) 날선 비판의 질문을 퍼붓는다(#83-89). 이 질문들에 대해 정당한 이유를 들어 반박하지 않고 힘으로만 억압하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조롱거리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인을 불행케 만드는 것임을 공포하며(#90) 형벌과 죽음과 지옥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열심하도록 권면해야 하고(#94)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이 평안에 대한 그릇된 확신이 아니라 고난을 통하여 하늘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확고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해주라(#95)며 루터는 일갈한다. 결론적으로 면죄부에 의한 연옥구원은 불가하다. 교황에게 그리할 권한도 없으며(#5) 참회의 교회법은 죽은 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8). 가장 궁극적으로 말해 진정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 없이 형벌과 죄로부터 완전 사함을 누리고(#36),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유익에 참여하며 이 참여는 면죄부 없이 하나님에 의해 허락받는(#37) 이유에서다.

95개 조항 사본 하나가 교황 탁자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별 반응은 없다[3]. 이는 대단치 않은 문제로 여겼기 때문이다. 루터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지지, 교황의 권능에 대한 루터의 공격으로 상황은 이내 돌변한다. 자신이 교황의 파문 아래 있음을 감지했을 때, 교황권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 있어 궁극적 권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루터가 선언한다. 사태가 악화된다. 교황은 루터가 있는 독일로 교서를 내려보낸다[4]. 주님의 포도밭을 멧돼지(루터)가 마구 파괴한다는 식으로 비하하며 이단으로 정죄한다. 이는 파면장이다. 신성로마황제 카알5세도 제국회의를 결정, 보름스 칙령을 발표한다. 면죄부를 가리켜 하나님의 거룩한 자비에 대한 신성모독으로 인식, 일반 백성들은 너도나도 들고 일어난다. 여론은 루터를 지지하는 쪽, 반대하는 쪽, 그리고 중간에 있는 쪽으로 갈린다. 독일에서 교황 대변인 노릇을 하는 알레안드로의 보고에 따르면 (과장되기는 했으나) 독일인의 9할은 "루터 !" 를 외치고 나머지는 " 교황에게 죽음을 !" 라며 부르짖는다. 루터 지지가 우세한 게 분명하고 루비콘은 개혁의 물결로 흐른다.

루터는 이 논제를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위한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 그는 단지 학자들을 초청해서 토론을 벌이고 저명인사들을 불러 그 뜻을 명확히 밝히고자 했을 뿐이다. 이것을 은밀하게 독일어로 번역해 출판에 넘긴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한 일이다. 개혁자 카알 바르트가 자신의 뜻밖의 출현을 두고 한 이야기가 루터에게도 적용되는 말이기에 옮겨본다.

"오래된 성당의 나선형 종탑을 기어오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어둠 속에서 몸을 가늠하려 손을 뻗치다 보니 손에 밧줄이 하나 붙잡혔다. 그 순간 나는 뎅그렁뎅그렁 하는 종소리에 그만 놀라고 말았다"

[1] 교황은 알브레히트를 마인츠 대주교로 임명해 주고 반대급부로 10,000두카트를 받는 바, 이 돈은 대주교가 은행에서 대출받아 충당키로 한다. 알브레히트는 관할 관구에서 8년간 면죄 베푸는 특권을 교황청으로부터 허락받고 여기서 들어오는 수입의 절반은 교황청 (임명 커미션 10,000두카트 별도) 절반은 은행 빚 상환에 쓴다.  * Ducat : 당시 유럽 통용 금화

[2] 알브레히트는 면죄부 팔아 은행 빚 갚는 상황에서 루터에게 동조할 이유가 없다. 테첼은 무지몽매한 백성을 한 치 혀로 구슬려 면죄부 판매 최일선에서 동전을 긁어모은 판매왕이다.

미주장신 신대원 장덕영
(Photo : ) 미주장신 신대원 장덕영

[3] 알브레히트 대주교가 받은 95개조 사본은 이내 로마교황청으로 전달되나 당시 레오10세의 두 가지 응답을 보면 그닥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루터는 술취한 독일인이다. 술 깨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탁발 수도승 마틴은 훌륭한 자다. 이 난리들은 수사들의 시기 때문이다". 교황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총회장을 새로 임명하며 루터가 얌전히 있도록 종용하는 선에서 그친다.

[4] 주여, 일어나소서 (Exsurge Domine) - "일어나소서, 주여. 당신의 소송사건을 심판하소서. 한 마리 멧돼지가 당신의 포도원에 침입했나이다..." 1520년 6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