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목회강화협의회(Korea Ministry Plan, KMP)가 7~21일, 매주 월요일에 '온라인 역사 기행: 한인이민교회의 뿌리'라는 주제로 '2021 KMP 웨비나'를 온라인으로 개최하고 있다. 14일 둘째날에는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이덕희 소장이 '최초의 한인 이민교회 - 하와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 소장은 "존스 목사(내리교회 목사/경기지방 감리사)는 1901년 흉년과 기근의 근본적인 해결 책으로 경기지방 여러 교회에서 이민을 격려했다"며 "1902년 12월 22일 121명의 이민단이 재물포항에서 떠나게 되는데, 차일 텐트를 치고 환송예배를 드렸다. 이것은 세계 어느 이민사에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121명은 미국 배가 아닌 '일본상선 켄카이마루'를 탔는데, (여기에는) 28명 교인 가족(50명)과 인천 내리교회 안정수 본처 전도사와 김이제 권사 가족도 포함됐다"며 "1902년 12월 29일에 일본 나가사키에서 '미국 증기선 갤릭호'로 갈아 타는데 건강검진에 의해 102명(이 중에 가정이 21명)만 타게 되었다.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했는데, 14일간의 항해동안 안정수와 김이제가 선상 예배를 주관, 전체 50명의 교인에서 내릴 때는 58명으로 증가 되었고, 이것은 첫 전도행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민단 63명이 1903년 3월 3일에 도착했다"며 "여기에는 현순(1901년 세례)과 부인, 윤치봉(1899년 세례)과 부인, 안언규(1900년 세례)가 있었고, 1903년 8월 카후쿠 사탕수수농장에서 윤치봉의 인도, 현순 보조로 예배를 시작해 50여 명이 참석했는데 이것이 첫 번째 교회 모임이었다. 이후 카후쿠교회는 1943년까지 존속했다"고 했다.
그는 "1904년 6월까지 약 2,800여 명의 한인이 도착했고, 김찬희 교수(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신약학 및 사역학 명예교수)의 아카이브에 1904년 하와이 한인 감리교회 교인 명단(국내외 첫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며 "1904년 총 14개 교회에 406명의 교인 중 108명은 이미 한국에서 세례를 받았고, 이것은 한인 전체 2,800명의 15%가 교인이다. 이 중 오아후섬 교회(5개 교회)에서 총 245명이 된다"고 했다.
이어 "하와이에 처음 개신교(감리교)가 들어온 것은 1819년 회중교회(현 United Church of Christ)이며, 1839년 하와이 총 인구(13만)의 11%(1만 5천)가 회중교회 교인이었다"며 "1855년 감리교는 샌프란시스코 감리교에서 W.S Turner 목사를 파송하면 시작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1862년 교회 건물이 성공회교회(1861년 조직)에 판매되며, 1885년부터 하와이에 일본인들이 많이 오기 시작해 188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인 노동자를 위해 Kanichi Miyama 목사를 파송(태평양연안 일본인 선교부 소속), 감리교가 다시 부활하는데, 1894년 백인교회가 시작된다. 그리고 1904년 5월 감리교총회에서 하와이 감리교회를 캘리포니아지방 소속 하와이 선교부로 변경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1905년 12월 27~31일 제1차 하와이 감리교선교부 연회가 개최되었다"며 "그리스도교회(Christ UMC)가 1903년부터 시작되어 1905년 4월에 선교회에서 교회로 승격, 1906년 가을에 한인학교가 개교, 학교와 교회가 한 군데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이 소장은 "1910년 10월 4일(이민 5년만에)에 호놀룰루 범교파 교회연합회(통공회)가 결성된다"며 "여기에는 감리교(1903년 설립)와 감독교(성공회1905년), 구세군(1906년 조직, 1912년 한인군영)와 자유교회(1909년 조직: 감리교에서 탈퇴) 등 4교회가 합쳐 교회연합회를 운영했는데, 목적은 교파 초월 화합과 친애였으며 월례회 등 행사 장소는 각 교회를 순회, 주로 그리스도교회에서 진행했다"고 했다.
이어 "1944년 2월~1946년 8월까지 하와이에서 '전쟁포로 사역'이라는 특수한 사역이 진행되었다"며 "남태평양 군도에서 잡혀온 2천7백여 명의 한인포로가 한 곳에 모여 임두화 목사를 필두로 영어교실을 열었고, 임두화 목사와 피난 와 있던 헨리 아펜젤러, 루터 맥커친 등의 선교사가 예배를 주관해 1946년 8월 귀환할 때 새 신자만 426명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953년에 교회 설립 50년 만에 교회가 자립했고, 1958년 하와이 감리교 총 14개 중 5 교회가 자립, 처음으로 한인교회(그리스도교회)가 완전 자립했다"며 "그리스도교회 이름 변경사는 1903년 한인 미션(Korea Mission)에서 1905년 (호놀룰루)한인감리교회(Korean Methodist, Honolulu), 1916년 제일한인감리교회(First Korean Methodist), 1965년 그리스도감리교회(Christ Methodist), 1968년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가 되었다"고 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회의 특수사역을 말하면 한인교회보(1904~45)를 출간, 한인기숙학교(1906~20)를 설립, 사진신부 결혼식(1910~), 국어학교(1923~40) 진행, 전쟁포로 사역(1944~46) 등을 말할 수 있다"며 "올리브교회의 특수 사역은 스코필드 군영 소속 미군과 결혼한 부인들의 가족이 오는데 1970년대 가정 문제가 심화되었다. 당시 데이비드 김(김창환)목사가 1975년 7월에 부임을 해 '한인가정상담소'를 설립, 1987년 7월까지 수천 명의 가족을 상담했다"고 했다.
최초의 한인 이민교회 ‘하와이 이민교회’의 역사
이덕희 소장, 14일 한인목회강화협의회 웨비나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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