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 논문 형태 연구서 대중들 접근 쉽게 편집해
김일성 독립운동사 왜곡, 민족사 전체에 대한 모독
<세기와 더불어>, 北 김정일 세습 정당화 수단 이용

세기와 더불어는 어떻게 날조되었나

이명영 | 세이지 | 280쪽 | 18,000원

김일성 연구 개척자이자 선구자인 故 이명영 전 성균관대 교수의 김일성 회고록 비판서 <세기와 더불어는 어떻게 날조되었나(원제 김일성 회고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사거 21년만에 출간됐다.

이 책의 출간은 최근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국내 출간이 허용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출판사 측은 오래 전 논문 형태로 나왔던 연구서를 대중들이 접근하기 쉽게 편집 출간했다.

김일성 회고록을 6권까지 분석한 저자는 숙환으로 유명을 달리하기 전, "김일성 회고록이 독립운동사를 왜곡 날조한 사실은 '민족사 전체에 대한 모독'이라는 입장"으로 이를 낱낱이 해부한 연구서를 남겼다. 김일성 회고록 7-8권은 자서전 형식이 아니라 사후에 나온 이른바 '계승본'이어서, 이 교수는 사실상 김일성 회고록 전체 분석을 완료한 셈이다.

저자는 북한 문헌을 일일히 비교 대조함으로써 인체를 해부하듯 '김일성 회고록'이 벌인 조작과 왜곡의 실상을 파헤쳤다. 부제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거짓말'.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북한 최고 작가들을 수년 간 동원해 김일성을 '민족의 영웅'으로 조작함으로써, 김정일 세습을 정당화하는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

<세기와 더불어는 어떻게 날조되었나>는 국가보안법 7조 '고무 찬양 금지조항'이 실정법으로 존재하고 법원이 이미 이 책에 대해 이적 표현물로 판시한 바 있음에도, <세기와 더불어>가 불법적으로 출판된 것은 국가 가치의 근본을 위협하는 범죄라는 입장에서 맞대응 성격으로 출간된 것이다.

김일성 부자의 대형 동상
▲장대현교회가 있던 자리에 들어서 우상화에 이용되고 있는 김일성 부자의 대형 동상. ⓒ크투 DB

서문을 쓴 김광인 박사(북한 권력 승계 연구 전문가)는 "김일성 회고록에 관한 한 최고의 분석서일 뿐 아니라, 이후에도 이 정도의 연구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책은 <세기와 더불어> 1-2권을 분석한 1부 '1% 사실로 날조한 99% 허구의 가계우상화', 3-4권을 분석한 2부 '업적 날조로 빛바랜 정밀한 역사 기록', 5권을 분석한 3부 '김정일 후계 작업 위한 방대한 역사 조작', 6권을 분석한 4부 '조선광복회와 보천보 사건은 조작의 결정판' 순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 故 이명영 교수는 북한 연구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로, 김일성이 일제 시대 활약한 독립운동가 '김일성'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이며, 일제 시대에는 '4인의 김일성'이 있었다는 '김일성 가짜설'의 결정판인 <김일성 열전>을 저술한 바 있다.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했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93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1963-1970년 경향신문, 1971-1975년 중앙일보에서 각각 논설위원으로 일했으며, 자유지성 300인회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도서유통 사이트 알라딘에 공개된 회고록 표지. 4월 26일부터 구매할 수 없는 상태다. ⓒ홈페이지

다음은 일부 내용.

79쪽 이승만 모독

"이승만이 모스크바에 가서 거액의 재정원조를 요구했다가 묵살당하자 반소친미 일변도로 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거짓말도 들어 있다. 이승만은 일본의 동북아 세력 팽창을 저지키 위한 방도 모색을 위해 1933년 7월 19일에 모스크바에 갔다가 그날로 퇴거명령을 받고 다음 날에 떠나온 일은 있다. 이유는 비자가 잘못 발급되었다는 것이었다. 국제당에 재정원조 운운은 당치도 않은 이야기이다."

227쪽 김구 모독

"평양에 갔을 때 김구는 김일성의 인격에 감복하여 조선을 바로잡을 영웅은 김일성밖에 없으므로 자기도 김일성을 따르겠다고 말했다고 날조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김구가 임시정부의 인장을 김일성에게 정중히 올렸는데 김일성은 민중의 신임만 있으면 되었지 인장은 가지고 가라고 사양했다고까지 날조를 감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때 김구는 김일성에게 일단 서울에 갔다가 다시 평양으로 올테니 그땐 여생을 보낼 과수원이나 하나 하게 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는 것이다."

19쪽 반한세력 분쇄해야

"김일성 회고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1. 2. 3 논문은 이미 발표되었고 4 논문의 교정을 마쳤습니다. 교정은 벌써 마쳤는데 앓느라고 전달이 늦었습니다. 그러니까 회고록 전8권 중 제6권까지 완벽한 분석을 마친 것입니다. 제7·8권이 남았으나 그것을 마저 할 시간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군요. 제 논문 1, 2. 3, 4를 합본해서 단행본으로 출판하여 저들의 반한사관을 여지 없이 분쇄하는 것만이 우리나라의 나아갈 길입니다."

30쪽 친북세력 득세경고

"남한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 정권을 동경하는 세력이 엄존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대북 추종주의자 혹은 주사파라 일컫는 이 사람들은 세련된 전술로 요소요소에 다 박혀있다. 언필칭 민족과 민주와 통일을 부르짖는 이 사람들은 개미 발자국 소리도 놓칠세라 곤두세운 감각으로 '남조선혁명'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들은 북한정권과 혈연적 혹은 사상적 혹은 조직적 유대 때문에 인생노선을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다."

144쪽 김정일 출생지 날조

"1983년 3월에 나온『백과전서』까지는 백두산 밀영이 곰의 골에 있었다고 했으니 그 이후부터 1991년까지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사령부 밀영의 위치가 국외에서 국내로 변경된 것이다. 소백수 골의 밀영의 위치는 김 주석 자신이 특정한 것이라 한다. 그리하여 거기에다 귀틀집을 짓게 하고 거기가 조선혁명의 사령부요 김정일의 생가요 하는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점이 언제인가 알아봤더니 김정일이 45세 되던 1987년 2월이었다. 아들이 어디서 났는지를 제일 잘 알 사람이 아무 거리낌 없이 온 세계를 향해 새빨간 거짓말을 마구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유일 최고의 사기극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구매 문의: 010-5693-8219, 010-4040-1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