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연과학 여러 중대가설 모두 완벽한 검증 불가능
새로운 방향으로 반증되고 폐기되고 재해석될 수 있어
이러한 겸손한 한계인식이, 자연과학 대하는 태도여야
<자산어보>, 아쉽게도 과학기술로 심하게 기운 편향성
◈과학에의 열망: 과학기술로 중흥한 대한민국
우리 한국인들이 역사상 최초로 과학기술의 무시무시한 힘을 처절하게 체험한 시기라 한다면 6·25 전쟁, 즉 한국전쟁을 지목할 수 있다. 북한 독재자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구걸하다시피 하여 얻어낸 무기와 자원으로 대한민국을 침략한 이 전쟁은 대한민국을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
영화 <자산어보>에 묘사되는 것처럼 19세기 조선은 성리학 근본주의에 찌들어 과학기술 수준이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제대로 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 어려웠던 까닭에, 침략자들을 압도할 무기나 공업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로 인해 우리 국군은 전쟁 초반 소련의 무기 지원을 받은 북한군에게 형편없이 밀렸다. 부족한 무기와 자원, 병력을 가지고 낙동강 전선에서 악전고투하던 대한민국은,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 병력의 도움을 얻어 구사일생으로 회생했다.
한국 역사상 단일 전쟁으로 사망자 수가 가장 많았던(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약 137만명 사망) 이 전쟁은 공식적으로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 재건과 성장을 이끌었던 두 지도자, 이승만과 박정희는 군사, 산업기술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을 육성하는 과업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두 사람은 한국전 당시 대한민국이 외세의 도움이 없었다면 필히 멸망했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 당시 미군이 선보인 앞선 과학기술과 공업력의 힘 역시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래서 휴전 이후 두 지도자는 국가의 생존을 위해 각각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수입하거나 베껴오는데 모든 힘을 쏟았다.
지금으로 따지면 거의 구걸과 편법이나 다름없는 지적재산권 침해를 무릅쓰고, 그야말로 '살기 위해' 과학기술 수입과 육성에 사활을 걸었던 것이다. 우리 국민들 또한 역사적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가지고 이러한 흐름에 적극 동참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이 누리는 경제적 성세는 이러한 절박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 부문으로 지도자들의 커다란 실책과 비위(非違)가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과학, 의료, 산업부문 전반에서는 기술혁신이 그치지 않았다.
비록 학문적 기반과 자원, 그리고 관련 인프라의 열악함 때문에 기술발전 불균형이 심각하긴 하지만,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한국인들의 커다란 신뢰감을 반영한 영화 <자산어보>. |
이렇듯 첨단 과학기술이 갖는 군사적, 경제적 힘을 비교적 단시간에 온몸으로 체험한 까닭에, 우리 한국인들은 사상 유례없이 빠른 무종교화 및 반종교화의 흐름에 휩쓸리게 되었다.
유교 전통, 무교 전통은 물론이고, 1980년대까지 급격히 교세를 확장했던 기독교 신앙도 현재로서는 과학기술 발전에 삶의 가치마저 내맡기는 과학만능주의 사고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 있다.
과학주의 사고가 팽배한 세태, 그리고 이를 반영하는 한국의 교육과정은 창의성 없이 암기하고 모방하고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데 특화된 동아시아 특유의 사고구조와 맞물려 무종교화 및 반종교화를 가속화시킬 뿐 아니라, 과학기술의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발전마저 가로막는 폐단을 낳게 된다.
자연과학과 기술과학의 힘을 맹신하는 태도가 오히려 과학기술의 온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이런 아이러니는, 과학기술의 한계에 대한 사유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과학에의 맹신: 과학주의의 과학적 한계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그의 저서 <과학적 신학>(A Scientific Theology)에서, 자연과학이 가진 인식적 한계를 지적한다. 자연과학 이론과 가설 전체는 최초 설정될 당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이며, 각각의 내용에 따라 그 검증 가능성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예를 들어 "물을 빙점 이하로 얼리면 얼음이 된다"는 가설, 혹은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가설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검증이 가능하다.
반면 "우주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자존한다"는 정상우주론(Steady-state theory)이나 "인류는 단순한 구조의 유기물이 진화되어 탄생했다"는 진화론의 기본가설 같은 것은, 일상적으로나 반복적으로 검증이 불가능하다.
애초 인류는 우주의 탄생과 인류의 탄생을 눈으로 목격한 바 없으며, 이러한 거대한 현상들은 인간의 힘으로 재현, 반복이 불가능하다.
결국 맥그래스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근본적이고 거시적이며 중대한 자연과학 가설 대다수는 인식적으로 유한한 인간 입장에서 항상 가설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힘으로 그 진리됨 여부를 입증할 수 없는 이러한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가설들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순간, 우리는 과학의 영역에서 벗어나 믿음의 영역에 진입한다. 종교적 믿음이 아닌 과학에 대한 믿음에 몰입하는 것이다.
과학주의는 이렇듯 진리로 주장할 수 없는 가설을 진리로 주장할 수 있다고 맹신하고, 억지 주장을 펼치는 독단적 태도로부터 유래된다. 따라서 과학주의는 그것이 신봉하는 과학 외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부정하는데, 특히 종교적 믿음, 신앙에 대해 그러하다.
이러한 입장의 대표적인 예로 리처드 도킨스와 크리스토퍼 힛친스 등이 고수하는 '새로운 무신론(New Atheism)'을 들 수 있다.
▲과학만능주의에 기반한 전투적 무신론, 새로운 무신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크투 DB |
이렇듯 독단적 과학주의에 사로잡힌 맹목적 무신론은 한국의 역사적 토양에 대단히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제대로 된 기술문명의 결여 때문에 처참한 고통을 겪었고, 그 기술문명을 갖추기 위해 전력을 다하면서부터 급격한 경제적·문화적 성장을 경험한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자연과학 발전 자체가 삶의 구원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영화 <자산어보> 속의 성리학 질타와 실학 숭상 태도는 이러한 정서적 배경 덕에, 관객들 다수에게 큰 공감을 얻게 된다.
한국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이런 과학주의적 태도는 인간의 삶에 신앙이 갖는 가치를 무시하는 문제를 야기하는 데 더해, 자연과학 자체의 온전한 발전까지 방해한다.
이는 입증될 수 없는 항구적 가설들을 진리로 옹립함으로써, 해당 가설들에 대한 반증적 요소들을 무시하는 편향된 사고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국의 일부 저명 과학 유튜브 채널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현생 인류 사이의 과도기적 화석(missing link)이 이미 발견되었고, 이것이 진화의 부정할 수 없는 입증 자료라고 단언한다.
만일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2021년 노벨 생리학상 또는 의학상 부문은 이를 주장한 한국의 유튜버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최근 인류 진화가설의 한 증거로 제시되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과도기적 화석. ⓒ유튜브 |
과도기적 화석의 유무 여부는 진화론 입증의 부분적 자료에 불과하다. 유인원 화석과 고대 인류 화석이 단층 시간대 별로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진화의 시간적 연속성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발견은 인류와 다른 종들이 인류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시간적 병치의 증거로도 해석될 수 있다. 최근의 화석 발견을 진화의 시간적 연속성을 입증하는 자료라고 단정하는 것은, 이미 그 해석의 태도를 결정짓는 편견에서 비롯된 처사이다.
그리고 이런 발견은 진화론의 여러 다른 본질적인 문제들, 예를 들어 유전자 희석(genetic dilution) 문제 등을 입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진화론은 단순히 몇 개의 자료만으로 입증될 수 없는, 생물의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거대한 가설로서 그 완전한 검증이 불가능하다. 결국 학문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본다면 창조론이나 진화론의 진리 여부 모두는 믿음의 영역에 속해 있다.
자연과학의 진정한 발전은 이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서구에서도 진화 가설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학문적 소양이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그것이 절대 진리로 입증될 수 없는 것임을 우선 수긍하고 그것의 높은 개연성을 내세울 뿐이다.
이러한 열린 태도는 서구 대중문화 콘텐츠 가운데도 자주 발견된다. 영화 <아이 오리진스>(I Origins, 2014)에서는 무신론자이자 분자생물학자인 주인공 이안(마이클 피트)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대사가 나온다. "(진화가설은) 가정에 불과하다. 사실이 아니다."
진화 가설 입증을 위해 전념하는 학자가 이 가설이 사실이 아님을 인정하고 연구를 진행한다. 즉 주관적으로는 진화 가설이 사실일 것이라 믿어도, 객관적으로, 학문적으로는 그것이 아직 사실이라 하기에 부족하다는 것, 믿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진화론이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 가설에 불과함을 지적하는 영화 <아이 오리진스> |
반면 영화 <자산어보>는 성리학이라는 형이상학적 신념 체계에서 빠져나와 자연과학 방법에 몰두하는 실학자를 한 명의 영웅으로, 진리의 선구자이자 개척자로 묘사한다.
물론 성리학 자체는 인간의 삶과 인식 수준을 후퇴시키는 잘못된 형이상학이라는 것이 이미 드러난 상태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이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던 것처럼, 성리학을 비롯해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형이상학 체계는 나름의 모순과 결함을 안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자연과학 발전이 모두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 과학주의적 태도도 적절한 것은 아니다. 이는 신앙에도, 과학에도, 삶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연과학과 기술문명 발전으로 인류가 얻은 혜택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미 과학기술이 전해주는 이익에 익숙해진 현대인이 과학 없는 신앙에만 의존하던 중세나 고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만능은 아니고,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구 인문학계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통해 이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과학기술의 적적한 가능성과 한계를 모색하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 반면 우리 한국인들은 역사적 정황상 이러한 반성적 사유를 수행할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
한국전쟁은 기술문명의 몰윤리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문명의 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 과학기술은 외골수적 맹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이 점을 지적하고, 과학기술의 올바른 위상을 지정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신앙의 관점에서 현대 자연과학의 여러 중대가설 모두는 완벽한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모두 잠정적 개연성을 갖는 이론일 뿐이며, 인간의 이해방법 변화와 우주적 차원의 환경변화를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반증되고, 폐기되고, 재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겸손한 한계인식이 자연과학을 대하는 적법한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영화 <자산어보>의 서사에 드러나는 어조 전체는 아쉽게도, 과학기술 편에 심하게 기울어진 편향성을 갖는다고 평할 수 있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