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예배는 디지털 시대 기독교에 유용하나
생동성 상실되고, 예배와 영상 시청 동일시 위험
현장 예배 필요 없다는 주장, '디지털 영지주의'
대면 부재, 교제 상실시키고 성도 관객 전락시켜
온라인 세례식 및 성찬식, '물질'이 은총의 수단
목회자와 신자, 극단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본지 편집고문 김영한 박사님께서 '비대면 시대의 목회와 예배'를 주제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최이우 목사) 4월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논의된 '비대면(온라인) 예배'에 관한 의견을 보내 오셨습니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비대면 예배와 성찬에 대한 긍정적 내용이 주로 논의됐습니다. -편집자 주
머리말
오프라인 교회(현장 교회)와 온라인 교회는 코로나 시대에 불가피하게 역동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온라인 교회는 디지털 시대에서 가상 공간 속에서 선교의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가상 공간도 그리스도의 주권 속에 있다. 온라인 예배는 현장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필요한 대체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교회가 갖고 있는 결핍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어떤 목회자는 오프라인 교회나 오프라인 예배 없이 온라인 교회와 온라인 예배로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디지털 영지주의'에 빠질 위험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I. 디지털 영지주의 위험성: 현장성 상실
1. 오프라인 예배 없는 온라인 예배는 '디지털 영지주의'?
온라인 예배는 현장 예배를 대체할 수 없다. 현장 예배에서 느끼는 예배의 시공간적 생동성은 디지털 화면에서 느끼는 장면으로 결단코 대체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테마 세계여행(성지 이스라엘 순례 등)을 온라인에서 보는 것과 같다. 화면에서 느끼는 현장의 모든 장면은 아름답게 느껴지나, 안방이나 거실에서 보는 화면을 통한 세계여행은 본인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현장에 가서 주민을 만나고 손과 발로 만지고 눈과 귀로 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온라인 화면에서는 현장의 그림을 보아서 아는 것은 현지에서 직접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손과 발로 만지고 그 자리에서 걸어보고 현지 자연환경을 느끼고, 현지 언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을 만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온 것을 부인하는 영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였다. 당시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가 육체로 온 것을 부인하였고, 그리스도는 단지 영으로서 가현적인 모습으로 왔다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천상으로 올라갔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2절)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3).
사도 요한은 역사적 예수의 오심에 있어, 신체로 오심을 강조하였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5a).
사도 요한은 그 자신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성자를 눈으로 보았고, 귀를 들었고, 손으로 만져보았다고 영지주의의 가현설을 반박하면서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강조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2. 예배 현장의 상실
온라인 예배의 문제점은 예배의 현장성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현장 예배 없이 디지털 예배만 드리게 될 때, 우리 신앙의 현실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나, 교회당이라는 처소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거기에 임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 예배가 관습화될 때 기독교 신앙은 차츰 생동성이 상실되고, 하나의 영상을 보는 것과 동일시될 위험성이 있다.
온라인이라는 가상 공간도 하나의 전도 공간이기도 하다.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 현장과 선교 현장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가상 공간은 어디까지는 온라인 상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세계의 공간이 될 수 없다.
온라인 예배나 전도에서는 전도와 선교 현장의 상실이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온라인 교회를 강조하는 자들은 선교 현장애 갈 필요 없이 온라인으로 선교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선교사가 현장에 몸으로 들어가 현지인들을 만남 없이 선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진정한 선교가 이루어질 수 없다. 코로나19 등 위기상황 발생으로 국경 폐쇄가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는 온라인 선교가 비상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선교의 열매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지에 현장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
3. 예수님 말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 이때라"에 대한 바른 이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음같이 말씀하셨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요 4:23).
온라인 교회 만능을 주장하는 목회자들은 이 구절을 현장 예배가 필요 없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현장 예배를 부정하셨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지 중요한 것은 영과 진리의 예배라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 이후 기독교는 2천년 동안 교회당이라는 장소를 부정하지 않고 어느 곳이든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2천년 동안 교회당은 세워졌고, 현장 예배는 드려졌다. 예수님은 현장 예배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어디든지 진리와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는 전염병 감염 위험성 때문에 부득이 잠정적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코로나가 종결되면, 모든 교회는 현장 예배로 되돌아가야 한다. 비대면 예배는 대면 예배에 참석할 수 없는 교인들이나 신앙 추구자들을 위하여 운영될 수 있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가 문고리에 '사랑 패키지'를 전달하면서 비대면 심방과 기도를 하고 있다. (본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
II. 비대면 예배에서 성도의 교제 상실
대면이 부재한 일변도의 비대면 예배는 성도의 교제를 상실하게 한다. 온라인 상에서의 예배에서 각 개인은 영상을 보는 하나의 관객으로 변모하고, 성도들 사이에 인격적인 교제가 상실되어 버린다.
교제란 사귐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과 성도 간의 신앙의 격려와 확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사귐은 현장에서 신자들이 서로 간의 만남이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적인 장(場) 속에서 이루어진다.
성육신의 실재성을 강조한 사도 요한은 성도 사이의 사귐을 중요시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
비대면 예배는 대면 예배에서 일어나는 성도 사이의 사귐과 교제를 주지 못한다.
III. 정서적 연결성 상실
현장 예배에서는 예배자들 사이에 인격적·정서적 연결성이 있다. 현장에서 모여 드리는 신자들의 공동체는 단순히 각 개인의 집합을 넘어서서, 공동체적인 연대성이라는 인격적 정서적 연대성이 있다. 이 가운데서 신자들은 보이지 않는 신령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세워지는 것이다.
비가시적 교회는, 가시적 교회 없이는 영지주의 교회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 칼빈은 지역 교회를 강조하면서 비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의 불가분적 통일을 강조했다.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 노마드 선교를 위하여 온라인 교회와 예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온라인 교회나 예배는 지역교회의 선교 보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온라인 예배에서는 현장 예배에서 느낄 수 있는 인격적 교제가 없다. 얼굴과 얼굴의 만남, 함께 부르는 찬송의 화음, 서로 간의 안부와 소통이 디지털 공간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눈과 눈, 귀와 귀, 입술과 입술 사이의 생동적인 소통이 없고, 목소리, 손과 손을 잡는 따뜻한 피부의 접촉이 부재한다.
사도 바울은 교린도 교회를 향하여 몸의 성전을 강조하였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여기서 각 개인 몸이 성전이라는 의미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각 개인이 성령의 전(temple of the Spirit)이라는 교회다. 다른 하나는 성령의 전은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몸이라는 신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이 성전인 몸을 음행(淫行)의 지체로 사용할 수 없다(고전 5:1, 16)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광림교회에서 준비했던 비대면 성찬 키트. 뚜껑을 열면 개인별 포도주와 빵이 나온다. (본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
V. 세례에서 물과 성직자의 부재
온라인에서는 세례식이 불가능하다. 세례 받는 자와 세례 주는 자가 만나야 한다. 세례는 물로 이마에 뿌려진다. 이 물은 물질로서, 디지털 화상으로 전달될 수 없다. 그래서 뿌려질 수 없다.
온라인에서는 실재의 구체적인 물이 없고, 세례자와 수세자 사이의 만남이 없다. 때문에 온라인에서 진정한 세례가 시행될 수 없다. 온라인에서 물을 상징하는 표시물은 어디까지나 상징에 불과하고 구체적인 물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성육신의 신비란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의 신체를 입고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물질이 하나님의 은총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실제 물이 아닌 물을 지시하는 온라인 상의 인위적 표시물은, 하나님 은총의 수단이 되기에 미흡하다.
V. 떡과 포도즙의 실재성 상실
성만찬도 바르게 시행될 수 없다. 성만찬에는 준비된 떡과 포도주에 성직자가 성찬 초대, 제정 말씀, 성령 임재 기도가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실재적으로 전달해주는 영적 실재가 된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떡과 포도주를 상징하는 표시물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징하는 표시물에 머물 뿐이다. 인위적 표시물이 아니라 물질적인 떡과 포도주가 하나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임재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현장 교회에서 성직자가 성찬 제정 기도를 드린 떡과 포도주는 온라인 영상에 나타나는 떡과 포도주와 다르며, 온라인 상에서 성도들은 그것을 먹을 수 없다. 집에서 스스로 준비한다 하더라도, 온라인 상의 떡과 포도주는 현장 교회에서 준비되어 성직자에 의해 제정된 떡과 포도주와 그 생동성에 있어 같다고 볼 수 없다.
VI. 온라인 교회는 현장 교회의 보완으로만 의미있다
온라인 상의 예배는 현장성이 부재하긴 하나, 그것은 코로나 감염를 막는 비상상황 속에서 부득이하게 행하는 보완적 예배라고 보아야 한다. 온라인 예배가 도움이 되는 것은, 현장 예배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 예배 없는 온라인 예배는 영지주의적 교인을 만들 수 있다.
온라인 교회는 현장 교회를 대체할 수 없다. 종교개혁적 전통에서 교회는 가시적 공동체와 비가시적 공동체로서 존재한다.
교회는 항상 지역 교회(가시적 교회)로서 성도들의 영적 교제(비가시적 교회)로서 존재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회는 2천년 동안 이 두 가지 형태로 존립해왔고, 세계 선교를 감당해 왔다.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가상 공간에서 선교를 위해 온라인 교회가 설립됐다. 온라인 교회와 예배는 이 시대의 요청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온라인 교회가 오프라인 교회, 현장 교회, 지역 교회를 대체할 수 없다.
온라인 교회는 지역 교회의 선교 방식의 하나의 지체로서, 현대 첨단미디어를 통한 선교 수단으로써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온라인 교회는 현장 교회를 대체할 수 없다.
온라인 교회는 오프라인 교회에 의존해서만 존재한다. 그렇지 못할 때, 온라인 교회는 디지털 영지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비대면 위주의 예배 가운데서도 시간을 나눠 찾아온 가정을 위해 기도해주고 있는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본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
맺음말
온라인 교회와 온라인 예배는 세계가 디지털화되고 있는 디지털 세계 속에서 교회가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디지털(Digital)'이란 문명도 창조시에 주신 하나님의 문화적 위임(cultural mandate)의 실현으로 볼 수 있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으로 신자들의 모임이 어려워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온라인 예배는 현장 예배의 보완으로서만 기능할 수 있다. 현장 예배나 교회가 없는 온라인 예배나 교회는 기독교 예배를 디지털 영지주의로 변환시킬 위험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현장 예배가 필요 없고 온라인 예배로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자는 디지털 영지주의에 빠지게 된다. 목회자와 신자는 극단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온라인 예배는 디지털 시대에 기독교 예배에 있어 유용하다. 그러나 대면 예배나 현장 예배에 근거하지 않는 비대면 교회나 온라인 예배는 기독교 예배의 본래의 모습에서 이탈되는 것이다.
김영한 박사
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