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Photo : 기독일보) 박진우 목사 (켈러 한인 제일 침례교회 담임)

저의 아버지는 어릴 때 중이염 수술을 잘못 받아 한쪽 귀가 거의 듣지 못하시게 되었습니다. 저희 친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장애가 평생 자신의 탓으로 여기고 자책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버셨던 할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고모 한 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다 물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 부자로 자랐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지셔서 하루 종일 집에 계시는 아버지와 배움이 짧으셨던 어머니로 인해 저는 항상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열등감으로 인해 저는 항상 어디에 가도 있는듯 없는듯 한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치원도 잘 다니지 않을때였는데 저는 대구에서 가장 비싼 부자들만 다니는 사립유치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저의 소심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그 유치원에 전설처럼 되어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치원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저에게 용감하지 않고 남자답지 않다고 놀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용감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안에는 여러가지 장난감을 두고 놀수 있도록 만든 큰집 지붕위로 친구들 보는 앞에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겨우겨우 올라가서 친구들을 내려 봤더니 벌써 쉬는 시간이 끝나서 친구들이 교실로 들어가 버린 겁니다. 저도 이제 교실에 가려고 지붕아래를 봤더니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너무 높은 겁니다. 아무리 용기를 내서 내려가려고 해도 도저히 무서워서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 위에서 그냥 있었습니다. 저희 반 선생님께서 안 그래도 존재감이 없던 저였기에 수업시간에 빠졌는지도 모르고 계속적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런 후 수업 끝나고 저의 어머니께서 데리러 오신 후에야 제가 없어진 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때까지 저는 그 지붕위에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를 발견하게 된 어머니와 선생님은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에게 친구들 앞에서 심하게 체벌을 당한후에는 더욱더 소심하고 열등감을 가진 학생으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목받는 자리가 너무 싫었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도 제가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는 것이 너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등학교때까지 항상 아웃사이드처럼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학생으로, 영화나 드라마로 비유하자면 이름없는 조연, 아니 단역배우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때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저는 그렇게 주목받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이 부모님이 목회자이시거나, 중직자 하다못해 집사 직분을 가지신 분들 대부분이셔서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교회문화나 신앙적인 스토리를 가진 친구들이었습니다. 혼자 교회를 다니는 저와는 다른 삶이었던 겁니다.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들에게 보이지 않는 열등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저는 여전히 주목 받을 수 없는 아웃사이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한후에도 이러한 열등감이 사라질줄 알았는데, 어디가든 제 이름보다는 김정은 선생의 남편으로만 불려졌습니다. 제이름을 아는 교회분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최선을 다해서 했던 모든 일들은 빈틈투성이고 그냥 손쉽게 하는 듯하게 보이는 아내가 한일은 성과가 있는 것을 보고 저는 집에서도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된듯한 느낌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평강이가 태어나니까 조연의 자리에도 밀려나서 단역이 된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전혀 그렇게 저를 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이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목회를 하기 위해 신학교에 왔습니다. 그랬더니 여기에도 여전히 저는 아웃사이드처럼 느껴졌습니다. 목회자분들은 특히 유학까지 오신 분들은, 부모님께서 목회를 하시거나, 선교사이시거나, 중직자이셔서 기도와 물질로 후원을 받으시면서 공부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시더군요. 목회자분들 중에 부모님께서 목사님이나 선교사님 자녀면 진골, 중직자 자녀면 성골, 평신도 자녀면 평민, 이도 저도 아니면 천민이라고 우스개소리로 합니다. 네, 저는 당연히 천민입니다. 아무리 목회자로 잘 준비되었더라도, 인간적인 빽이 없으면 제대로 된 사역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아는데 까지는 얼마가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빽이 있는 목회자분들은 그렇게 열심히 준비되지 않는 것 같았는데도 졸업후에 바로 사역자리로 가게 되는 것을 보면서 말입니다. 속으로 또 다른 좌절감과 열등감이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몇 해 전부터 가장 기본적인 진리인 복음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나님이 저의 주인이시며 제가 그 분 앞에서 철저한 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만이 드러나야 한다는 걸 실재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의 약함이 참된 강한 능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연약함과 열등감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유해졌습니다. 진리로 말미암은 자유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 안에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기준에서 오는 열등감으로 이제껏 힘들어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명을 따라 그저 충성되이 살면 되는 것을, 세상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열등감 속에서 지내왔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예수님이 제 삶의 주인으로 바뀐 이후로는 그러한 열등감은 확실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을 마음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이미 받은 은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마음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사역을 하다보니 저와 같은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적으로 성공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열등감과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는 걸 말입니다. 사실 그다지 대단한 인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잘 나도 항상 잘 난 상대는 우리 앞에 존재하고 있으니 항상 이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살아가니 말입니다.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더욱 더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실질적으로 나의 삶의 주인을 바꾸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한 절대 이 열등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진리이신 예수님이 나의 삶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줄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