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박사의 '조직신학 에세이'를 게재합니다. 정성욱 박사는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M.Div.)를, 영국 옥스퍼드 대학 신학부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 지도 하에 조직신학 박사학위(D.Phil.)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30여권의 저서, 편저, 역서를 출간했으며, 수백여편의 학술/비학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신학대학원(Denver Seminary) 조직신학 교수이자 아시아 사역처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지금까지 15회에 걸쳐서 조직신학의 구원론 (soteriology)과 인간론 (anthropology) 분야의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탐구해왔다. 이번 회부터는 (ecclesiology) 중심 주제들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성경 속에 나타나는 교회에 대한 중요한 이미지 (image), 비유 (parable), 초상 (portrait)들에 대해서 하나씩 상세히 논의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이미지에 대해서 묵상하기 전에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오늘날 교회만큼 무서울 정도로 오해되고 있는 개념은 없다. 어떤 이들은 교회를 예배당과 교육관 그리고 주차장을 갖추고 있는 건물이라고 생각한다. 석재로 또는 목재로 혹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물리적 건축물을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철저한 오해이다. 교회가 물리적인 예배당을 소유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중요한 사역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는 물리적 건물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를 사교단체 (social club)라고 오해한다. 마음과 생각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인간적인 교제를 누리는 곳이 교회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중요한 기능들 중 하나가 교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교회는 단순한 사교단체나 사교클럽이 아니다. 또한 혹자들은 교회가 구제단체 (relief organization) 또는 구호단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가난하고 불우한 자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구제하고, 긍휼을 베푸는 단체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중요한 기능들 중 하나가 구제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교회의 본질이 구제단체인 것은 아니다. 교회는 구호단체의 수준을 무한히 초월한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주님과 구원자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함께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생명과 진리의 공동체를 이룬 것, 바로 그것이 교회다. 교회의 본질에 대한 바른 개념에 기초해서 신·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는 교회에 대한 다양한 그림언어들, 이미지들, 비유들, 상징들, 초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격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성경은 선포한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1:22-23).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성경은 머리와 몸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고 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깊게 묵상하면 몇 가지 중요한 진리가 도출된다.
첫째, 비유컨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 2의 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처음 성육신하셨을 때 예수님은 제 1의 몸을 가지셨다. 예수님의 제 1의 몸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요한복음의 증언과 같이 예수님이 영혼과 몸을 포함하는 사람의 본성 전체를 취하셔서 100퍼센트 하나님이시자 100퍼센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지셨던 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바로 주님이 성육신하실 때 취하셨던 몸은 부활한 영광스러운 몸의 상태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존재한다. 그러나 주님의 제 2의 몸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이 땅에서 힘있게 출발하였고,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은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교회 가운데 임재하셔서, 교회를 다스리시며, 교회를 인도해 가시고 있다.
둘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교회가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는 것이 바로 죽음을 의미하듯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면 교회는 죽을 수 밖에 없다.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만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단순히 생명력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교회에게 부여된 원래의 기능과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연합이라는 심오한 진리를 드러낸다. 모든 개개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에 성령의 인치심과 내주를 통하여 예수님과 영적인 연합을 이루게 된다. 마찬가지로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머리 되신 그분과 완전하고도 친밀한 연합과 교제를 누리는 특권을 부여 받은 것이다.
셋째, 몸 된 교회가 교회로서의 정상적인 기능을 감당하려면 그 머리의 명령과 뜻과 지령과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도 머리의 명령과 지령과 지시에 복종하지 않는 몸은 장애나 질병 상태에 있는 몸으로서 그 몸이 감당해야 할 원래의 기능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는 교회가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명령과 뜻과 지령과 지시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심각한 질병상태에 있는 교회 즉 교회의 본래적 사명과 기능을 감당할 수 없는 교회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교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이 사데교회를 향하여 하신 말씀 그대로의 교회이다. 즉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 인 것이다 (계 3:1). 이 진리를 한 차원 더 밀고 나가면 교회의 진정한 지도자는 사람 목회자나 장로들이 아니라 바로 우주의 왕이신 우리 주님이심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 장로, 집사 등 모든 직분자들과 성도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교회의 주인과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고 복종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넷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진리는 사람의 몸이 여러 지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있는 것처럼, 교회도 다양한 지체들이 모여서 완전한 하나의 유기적, 생명공동체를 이뤄야 함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2장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잘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는 각종의 지체들이 모이는 믿음의 공동체이면서도, 동시에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완전히 하나의 몸으로 움직이는 절대 연합의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 분열이 있고, 분리가 있다는 것은 그 몸이 심각하게 병들었음을 의미한다. 생물학적인 면에서도 사람의 몸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각각의 지체들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기능한다면 그 몸은 매우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런 몸을 가지고서는 사람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과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볼 때 다양한 지체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역시 철저히 하나가 되어 기능하고, 움직이고, 역사할 때에만 교회의 본래적 기능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2-3)고 권면하였다. 교회가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용납과 평안이 필요하다. 즉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진리는 교회의 본질이 하나의 조직적 공동체 (organization)이 아니라 유기적 생명체 (organism)임을 의미한다. 교회에도 일정한 조직체적 요소가 있음은 분명하다. 교회 안에 있는 목사, 장소, 집사와 같은 직분들과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교인총회같은 회의들은 교회의 조직체적 요소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그런 조직체적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운행과 생명의 흐름이다. 마음과 생각의 하나됨이다. 같은 소원을 가지고 동일한 사명의식으로 뭉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는 진리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유기적 공동체는 그냥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라나는 과정 중에 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16)고 선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