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시타 고노스께는 파나소닉 창업자입니다. 어려서 가난과 못 배움과 함께 몸이 병에서 떠날 날 없이 약했다 합니다. 그래도 약함을 원망하기보다는 대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because of"에 해당되는 "때문에"에서 "덕분에"로 바꾸어 살았다고 합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망했다가 아니라. 못 배웠기 때문에 기회조차 없었다가 아니라. 약했기 때문에 겨우 살았다가 아니라, 모두다 덕분에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덕분에" 살기로 다짐했던 그때부터 가난 덕분에 자수성가하는 법을 배웠고. 못 배운 덕분에 누구에게나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갖게 되었고. 약한 덕분에 건강을 조심해서 장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낭만이 일본의 어휘까지 바꾸게 했고, 그의 낭만이 일본의 문화에 빛을 비추는 창문이 되었다 합니다. 그런데 바울 당시에 유대 사회도 체면 문화 사회였습니다. 우리의 유교 문화보다 더 심한 체면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바울은 드러냅니다. 사방의 환난으로 인하여 밖으로는 다툼과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외로울 때는 디도가 와서 좋다는 감정 표현도 합니다. 예상 밖으로 인간적이었습니다. 바울에게서 낭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약점을 토로하면 공감대가 형성 되지만 장점을 자랑하면 경쟁이 일어납니다. 공감이 낭만이 자라는 토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비슷합니다. 그래서 욕심대로 살면 다른 사람에게 인생을 읽히게 됩니다. 뻔한 인생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살면 달라집니다.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세상은 예측을 못했기에 당황해 합니다. 예측 못하는 특이한 매력이 있다면 낭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삶은 낭만적 삶입니다. 말씀에 이끌려 사는 삶이 세상과 다르게 낭만이 있습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우선적으로 섬깁니다. 낭만적인 교회입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생업이 어렵지만 낭만적으로 살려는 성도들이 아름답습니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예배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드려도 주일헌금은 매주, 십일조는 주간과 한 달을 우편함에, 우편메일로 보내주시는 성도님들이 얼마나 낭만적인 분인지 모릅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라 했더니 잠만 잔 제자들과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말씀 하십니다. 혼낼 상황인데도 품으시는 주님이 낭만적이십니다. 질책할 상황에서 좋게 봐주고, 있을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있을 수 있다고 피할 여지를 남겨두시는 참 낭만적인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 분을 본받는 다면 우리도, 세상도 주님을 통해서 잃었던 낭만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김병규 칼럼]예측 못하는 특이한 매력이 있다면 낭만입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