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루이자 메이 올컷 | 강미경 역 | RHK | 976쪽 | 16,500원
흐르는 물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육지를 감싸면서 끝이 보이지는 격랑이 이는 넓은 바다가 있고, 바다보다는 작고 그 끝을 짐작할 수 있는 거센 물살의 강물이 있으며, 작고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이 있습니다. 시냇물은 강이나 바다처럼 일부러 찾아가서 만나기보다는 산 속이나 들을 지나가다 자연스럽고 우연히 만나는 일상에 가까운 흐르는 물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작은 아씨들>은 이런 시냇물과 같은 책입니다. 줄거리는 미국 남북전쟁이 진행중이던 1860년대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사는 마치 가족의 네 자매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도서에서 고전이라 함은 수많은 책들 중 오래도록 사랑받는 책을 말합니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가 1868년 출간되었으니, 152년이나 된 책입니다. 고전에 속합니다.
흔히 '고전(古典)은 고전(苦戰)을 면치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전은 오랫동안 사랑받은 책이라 의미있고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고 읽으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너무 어렵거나 지루해서 읽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우선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당시 시대상이나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고, 당시 사조의 흐름과 현대의 사조가 다르기 때문에 문체를 독해하기도 어렵습니다. 더욱이 고전이 외국 책이라면, 이 어려움은 배가 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충분히 '선전(善戰)'할 수 있는 고전입니다. 주제가 지극히 소소하면서 일상적이라 쉽게 이입이 되고, 문체도 현대적입니다.
네 자매의 모습은 우리 이웃의 모습이고, 자녀가 있는 가정, 특히나 자매만 있는 가정, 특히나 교회를 다니는 가정의 자매를 둔 가정에서는 너무도 빨리 공감이 갈 겁니다.
네 자매는 모두 다 특징이 있고, 가정의 역할이 뚜렷합니다. 아버지가 남북전쟁에서 군인으로 싸우다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어머니가 간호하기 위해 전쟁터에 가면서 아이들에게 이런 당부를 합니다.
"메그(첫째), 매사에 신중하게 처신하고 동생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뭐든지 해나(하녀)와 상의하고, 곤란한 일이 생기면 로런스 씨한테 가서 도움을 청하거라.
조(둘째), 너무 낙담하지 말고 경솔한 행동은 삼가거라. 엄마한테 편지도 자주 쓰고, 평소처럼 씩씩하게 우리 모두를 격려해 다오.
베스(셋째), 음악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네가 맡은 집안일에 충실하렴.
그리고 에이미(막내),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언니들 말 잘 듣고 지내야 한다(348쪽)."
메그는 네 자매의 맏이라 동생들을 책임질 임무를 줍니다. 둘째 조는 글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편지 쓰는 일을 맡기고, 셋째 베스는 피아노를 잘 치니 음악으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고, 막내 에이미는 어리니 언니들을 잘 따르라는 겁니다.
어머니의 당부에서 네 자매의 개성과 특성을 잘 이해하여, 그에 맞는 임무와 역할을 분담해 주는 리더의 모습을 봅니다.
이 책은 일반 문학에 분류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문화 자체가 기독교적이기도 하지만, 특히 이 책은 그 색채가 더합니다.
책의 첫 장의 제목부터가 '천로역정 놀이'입니다. 존 번연의 기독교 우의소설인 <천로역정>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은 책의 중간 중간에 자주 나옵니다. 또한 인물들 간의 대화나 상황을 설명할 때 성경 구절들이 직간접적으로 수시로 인용되고, 기독교적인 가풍은 대화에서 자주 나옵니다.
둘째 조가 전쟁터에 간 아버지를 담담히 보낸 어머니의 의연한 모습에 감탄하다 시간이 지나 흔들리는 모습에서, "엄만 아빠더러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게다가 아빠가 집을 떠나실 때도 울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잘해나고 계시잖아요"라고 하자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단다. 그래서 아빠가 떠나실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거야. ... 내가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건 아빠보다 더 좋은 친구가 있기 때문이란다.
너를 괴롭히는 인생의 수많은 유혹과 난관은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더 많아질 거야. 하지만 네가 지상의 아버지에게서 느끼듯이, 천상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힘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거다.
네가 그분을 사랑하고 믿을수록 그분의 존재를 더욱 가까이 느끼게 되는 건 물론이고, 인간의 나약한 힘과 지혜에 덜 기대게 될테고, 그분의 사랑은 지치거나 변하는 법이 없고, 평생에 걸쳐 평화와 행복과 힘의 원천이 되어준단다.
조, 내 말을 믿고 엄마한테 털어놓는 것처럼 그분에게도 네 근심과 소망, 죄와 슬픔을 숨김없이 털어놓거라(173-174쪽)."
그 어떤 신앙적인 글보다 감동적이면서 기독교적 색채가 자연스럽게 묻어있는 글입니다. 이 책에서는 기독교가 억지로 믿는 종교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분위기이고 가풍입니다.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 중 하나는 '가난'입니다. 자신의 가정은 가난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하다못해 결혼한 첫째 메그의 남편 존은 메그에게 '자신은 가난하니 돈을 아껴쓰라'고 합니다.
메그가 가난한 존과 결혼 전, 고모가 "결혼은 현실이니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며 부자인 청년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메그의 뜻을 존중하여 존과의 결혼을 찬성합니다. 이때 둘째 조가 어머니에게 "언니를 부자랑 결혼시키고 싶지 않으세요?" 묻자, 어머니는 돈에 대해서도 신앙적인 답을 내립니다.
"물론, 돈은 유용한 것이지, 난 내 딸들이 돈에 너무 쪼들리며 사는 것도 바라지 않고, 돈에 너무 집착하며 사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존이 확실한 자기 일만 있다면 엄마는 그걸로 족해. 빚을 안 지고, 메그를 고생시키지 않을 만큼의 수입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엄마는 재산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을 사위로 맞아들이고 싶은 욕심은 없다. 물론 지위와 돈에다 사랑과 미덕까지 겸비하고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겠지. 하지만 행복은 평범하고 작은 집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단다(418쪽)."
다분히 청교도적인 말이고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자매들이라, 자주 등장하는 '가난'에서도 책 어디에서도 불행하거나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이 책은 시종 잔잔하게 흐르다, 마지막에 가서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잠기게 합니다. 셋째 베스가 아픔으로 죽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스를 간호하던 언니 조가 슬픔에 빠지자 베스는 조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나도 알아. 이제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난 언제까지나 언니의 베스로 남아 언니가 그 어느 때보다 언니 자신을 사랑하고 돕도록 할 테니까. 이제 언니가 나 대신이야.
내가 가면 엄마 아빠한테 잘해드려. 엄마 아빠는 언니한테 의지하시려 할 거야. 그 기대 저버리지 마. 혼자 짐을 지는 게 힘들면 내가 언니를 잊지 않고 있다는 걸 기억해.
그럼 훌륭한 책을 쓰거나 세계일주를 하는 것보다 더 행복할 거야.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으니까. 사랑이 있으면 쉽게 떠날 수 있어(834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고, 사랑이 있으면 쉽게 떠날 수 있다."
삶의 진실은 큰 이야기에만 있지 않습니다. 삶의 진실은 대단한 곳에만 있지 않습니다. 삶의 소소한 곳에 흐르는 우리의 이야기에도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네 자매이지만, 대체로 둘째 조에게 비중이 많이 가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네 자매의 둘째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등 조의 많은 부분이 저자와 닮아 있습니다. 한 가지 다른 면은 책에서 조는 결혼을 하였지만 저자는 53세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겁니다.
저자의 성향답게, 이 책은 많은 문학 서적과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이 나옵니다. 당시 기독교적인 문화 못지않게 문학의 문화가 이 작은 가정의 삶에도 얼마나 깊숙이 관여했는지 알 수 있어 내심 부러웠습니다.
<작은 아씨들>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의 원제는 'Little Women', 한글 제목과 같습니다. 2부의 원제는 'Good Wives', '좋은 아내들'입니다. 즉 여성에서 아내로의 성장을 다룬 소설입니다.
흥미로운 건, 저자의 삶은 진보적이고 급진적이었음에도 제목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겁니다.
이 책이 영화로 나오면서 몇 곳의 출판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제가 이 출판사의 책을 선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186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에 영화 장면을 띠지로 넣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1부 1장 제목이 다른 출판사의 책은 '순례자 놀이'로 되어 있는데, 이 책은 '천로역정 놀이'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원문은 Playing Pilgrims).
번역자가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있고, <천로역정>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물론 저는 이 번역자가 <천로역정>을 읽었다고 보진 않습니다. 중간에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과 동행하는 소망(hopeful)이라는 인물을 영어 발음 그대로 '호프풀'로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책에 대해 어떤 사람은 '번역이 다른 책보다 조금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은 아주 잘 번역한 책이고, 번역자가 조사를 많이 했습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저자답게 아주 많은 부분에서 소설의 인물들과 그리스 신화의 신들, 성경 구절을 인용했는데, 일일이 다 주석을 달았습니다. 번역자의 수고가 돋보이는 부분이고, 편집도 매끄러웠습니다. 더욱이 영화 스틸컷이 33컷 수록되어 있어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976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분량에 비해 가격도 착하고(16,500원), 이야기도 일상적이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카피가 '우리의 인생은 모두가 한편의 소설이다'입니다.
소설이란 사실 대단한 게 아닙니다. 우리의 뻔하고 진진한 모습의 모음도 읽을 만한 소설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이 공감가는 이유가 소설의 주제와 내용이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나의 이웃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소설이긴 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고, 이것이 얼마나 대중적이면서 세계적인 공감의 소재인지도 알 수 있게 됩니다.
믿지 않는 일반 독자들이 읽으면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성경의 정신이 스며들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우리나라에선 이런 좋은 기독교 문학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다시 읽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꼭 한 번 읽어보기 바랍니다. 강력하게 권합니다.
이성구(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