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위급한 시기, 소모적 논쟁의 전염
코로나19가 한국교회에 영상예배가 옳은가를 묻고 있다. 아니 코로나19라는 위급한 시기에, 한국교회는 소모적 논쟁에 전염됐다.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한 이웃 사랑보다, 영상 예배가 옳으냐 하는 근본주의적 질문으로 뜨거웠다.
안타깝다. 과연 그런 걸 논할 때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될 일인 것을.
영상 예배와 동일 본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어느 교회의 예배 실황이 공중파를 통해 중계된 것이 이미 30여 년 전이다. 컬러TV가 보급된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상당수 교회당 안에 예배 촬영을 위한 카메라가 설치된 지 이미 오래다. 방송국처럼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일로 예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이미 많다.
지미집(Jimmy jib) 같은 방송 장비를 갖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교회들이 상당수다. 찬양대를 비추고 반주자의 손가락을 줌인하며 설교자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주는 방송 장비는 그 어떤 방송국만큼이나 고급이다.
한 장소에 모이지 않고 각 격실에서 TV 화면을 통해 예배드리기 시작한 것이 오래 됐다. 목사의 얼굴을 보지 않고 화면에 비친 모습만 보고도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상당수다.
예배당에서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볼 수 있게 해서, 이른바 '가나안 성도'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 지도 오래다.
그러한 방식이 유행처럼 들어올 때는 다들 침묵했다. 그래도 되느냐고 묻지 않았다. 더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장소만 같을 뿐 공동체성이 없는 예배, 함께 예배드리는 이의 이름을 몰라도 되는 예배가 이미 본질상 영상예배다.
2부, 3부도 모자라 7부까지 나뉘어진 예배, 장소만 같을 뿐 공동체성은커녕 시간도 달리 드려지는 예배, 함께 드리는 것 같지만 사실상 함께 드리지 않는 예배가 한국교회에 가득하다.
그러한 예배가 이미 본질상 영상예배다. 그런 식의 예배가 일상화되는 것이야말로 옳지 않다.
예외적인 예배가 일상화된 한국교회
코로나19라는 예외가 오기 전부터, 한국교회는 비정상을 정상화했다. 예외를 규범화했다. 예배의 공동체성은 아주 오래 전에 산산조각났고, 한 장소에서 예배한다는 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의미해진 지 오래다.
영상으로 드리진 않지만, 영상으로 드린 것과 본질상 같은 예배가 한 교회 건너 한 교회다. 이러한 한국교회가 이 위급한 시기에 영상이냐 아니냐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논쟁거리다. 한국교회의 현주소다.
예배의 공동체성을 물어야 할 때
예배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예배를 드리지만, 정작 예배의 본질에서 너무나 벗어난 우리는 논쟁할 때가 아니라 고민할 때다.
영상 예배는 예외적인 일이다. 이 예외를 일상화하고 있으면서도, 예외를 논하고 있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코로나19라는 예외가 하루속히 일상으로 바뀌기를 기도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 참에 한국교회의 예배도 진정한 일상화를 회복하길 바란다.
공동체성을 잃어버린 예배를 회복하길 바란다. 우리는 지금 영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예배의 공동체성을 물어야 할 때다.
공동체성을 상실했기에, 이 위급한 시기에 이웃의 어려움에 대한 관심보다 영상예배가 옳으냐 그르냐로 논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특강 예배모범』(흑곰북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