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에 고난이 많다는 뜻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저 문제가 생기고, 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해 아래서 자신이 수고한 모든 것이 다 바람을 잡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고난의 바다라 할 수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제 인생 가운데도 여러 번의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버님이 4년간의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신 일이었습니다. 27살에 유학을 온 뒤 한번도 제대로 된 아들 노릇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곧 임종하실 것 같다는 소식은 제게 큰 슬픔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뵈었던 아버님의 피골이 상접한 모습은 제게 눈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버님이 돌아가시니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평소 감성적이라, 설교를 할 때도 자주 눈물을 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리만치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국립묘지에 모시기 위해 화장을 할 땐, 시뻘건 불 속으로 들어가는 아버님의 관을 보면서 박수도 크게 쳤습니다. 이 땅의 모든 수고를 마치시고 이제 천국으로 입성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감격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정말 믿겨졌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어 했던 고난은,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던 일이었습니다. 큰 애가 6학년이었고, 둘째가 2 학년, 그리고 막내가 pre-school을 다니고 있었을 때여서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인사불성이 된 아내를 업고 당시 올림피아종합병원 ER로 뛰어들어 갔지만, 아내의 왼쪽 뇌는 이미 2/3 이상이 죽어 있었습니다. 실핏줄이 터져서 1주일 동안이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그곳에서 수술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병세가 워낙 중해서 그곳의 시설로는 수술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그 이튿날 시애틀에 있는 스위디쉬병원으로 이송됐고, 그곳에서 하루를 더 지낸 후에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를 싣고 가는 앰뷸런스를 좇아 가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대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러십니까? 제가 한 일이라곤 제 인생 스물셋에 헌신하고 주를 섬긴 것뿐인데 이렇게 하시면 제가 어떻게 주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바락바락 하나님께 대들고 있을 때 마음 속 깊이 이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네 아내를 위해서 내 아들을 십자가에 주었어..." 그 짧은 깨달음 앞에서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가운데 아내의 수술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작년엔 혈압때문에 저도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246에 139... 생각해보면, 제 인생은 고해였고 또 지금도 그런 고난의 바다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나왔던 고난들은 저를 죽이는 고난들이 아니었습니다. 저를 경성케하는 고난이었고, 오히려 저를 살게 하는 고난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제 곁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제게 고난이 남아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그 고난이라는 문을 열면, 절망이 바뀌어 소망이 됩니다. 고난을 통해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을 만나게 되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