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의미와 기능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매우 정교하고 체계적인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는 구금 시설이다. 그러나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현황과 운영 체계, 그리고 인권 실태에 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외부로부터 폐쇄되고 격리된 사회 체계를 갖고 있으며, 구금 시설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은 전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자료는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와 관리자 등 경험자의 증언과 인공위성 촬영 사진 등 매우 제한적 수준에서 제공되고 있다.
북한은 구금 시설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대규모의 다양한 구금 시설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북한 구금 시설은 크게 5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정치범수용소, 교화소, 집결소와 교양소, 노동 단련대, 구류장으로 나눌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대표적인 구금 시설은 경찰서 유치장, 구치소, 교도소의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 구금 시설의 기능과 역할은 각 시설별로 차이가 있으며 관련 법률에 교화소, 노동 단련대, 구류장은 공식적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정치범수용소와 집결소 및 교양소는 규정이 없는 구금 시설이다.
정치범수용소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 관계자와 그의 가족을 공식적 재판 절차 없이 수용하고 가혹하게 처벌하는,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특별 구금 시설'인데 북한 법률과 행형 체계에서 정치범수용소(관리소)의 명칭과 설립, 운영 근거를 명시하고 있는 관련 규정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치범수용소는 석방 가능성에 따라 완전 통제 구역과 혁명화 구역으로 구분되며, 혁명화 구역은 15호 요덕수용소 일부 구역과 18호 북창수용소에 존재한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정치 체제와 지도자에 대한 저항자와 잠재적 위협 세력을 사회로부터 완전 격리 차단하고, 주민들에 대한 정치적 공포심을 조장하여 체제 안정을 도모할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치범은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조사와 수사를 담당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처벌 수준과 수용 시설 관리도 국가안전보위부의 업무이다. 북한 형사소송법은 반국가 및 반민족 범죄 사건의 관할권을 안전 보위 기관이 갖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북한의 안전 보위 기관은 국가안전보위부를 의미한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한국 및 국제 사회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며, 북한 내부에서는 '관리소'로 명명되고 있다.
북한에서 인권 침해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는 조사 및 구금 시설로 알려져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의 「NKDB 통합인권 DB」 분석 결과 전체 인권 침해 사건의 49.3%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구금 시설에서 발생하였으며, 정치범수용소 발생 사건은 전체의 8.3%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대표적인 인권 침해 시설이며, 인권 침해의 수준과 방법, 기간이 가장 심각한 곳이다.
2. 북한 정치범수용소 현황과 수감 실태
북한 당국은 현재까지 정치범수용소의 존재와 운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객관적인 정보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에 의하여 실시된 정치범수용소 관련 경험자 53명의 심층 면접 자료와 기존 문헌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분석한 결과, 북한에서 과거 운영했거나 현재까지 운영하는 정치범수용소는 15곳으로 나타났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정치범수용소는 4곳이며, 국가안전보위부에서 14호 개천, 15호 요덕, 16호 화성, 25호 수성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 22호 회령수용소는 최근 해제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민보안부가 운영하는 18호 북창수용소의 경우 2006년경에 전 지역이 해제되고 소수의 수감자만이 개천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개천 지역에서 인민보안부가 18호 수용소를 소규모로 운영하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산하 정치범수용소의 대략적인 수용 인원은 10만여 명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동 및 개편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에 구체적 수용 인원을 추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시기별로 수감 인원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시기별 수용 인원의 증감을 분석하는 것은 현재로는 어려운 실정이다.
정치범수용소는 운영방식에 따라서 완전 통제 구역과 혁명화 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완전 통제 구역은 수감될 경우 살아서는 사회로 복귀할 수 없는 종신 수용 구역을 의미하며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곳으로, 살아 있는 동안 평생 노동에 종사해야 하며 사망 후에도 시신은 수용소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가장 잔인한 곳이다.
혁명화 구역은 일정한 형기를 마치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구역을 의미하며, 상대적으로 처벌 수준이 낮은 대상자를 수감하게 된다. 혁명화 구역 수감자들은 형기를 마친 후 사회로 복귀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사회생활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조직 단위 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 북한에 운영되고 있는 정치범수용소는 모두 완전 통제 구역이다. 다만 15호 요덕수용소 중 일부 지역에 혁명화 구역을 운영하였으나, 최근 혁명화 구역은 완전 통제 구역으로 전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수용소의 특성에 따라서 혐의를 받고 있는 당사자만을 수용하는 곳과 가족만을 수용하는 곳으로 구분되고 있다. 현재까지 제시된 증언을 분석한 결과, 현재 운영되는 수용소 중 수성 25호는 본인만이 수감되고 가족을 동반 수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외는 가족만이 수감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치범수용소 중 25호 수성을 제외한 다른 수용소는 특정 지역 전체를 수용소로 지정하여 일반 주거 형태로 거주하고 있다. 따라서 외부에서 볼 때 정치범수용소의 외곽 철조망과 경계 시설을 제외하면 일반 농촌 또는 탄광 지역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곳에 수감된 경험을 가진 당사자에게 정치범으로 수감된 이유를 조사한 결과는 일반 탈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존 설문 조사 결과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2009년에 일반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정치적 문제로 처벌받은 사람의 체포 이유는 정치적 발언, 탈북과 한국행, 반정부 행위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정치범수용소 직접 경험자의 증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이다.
북한에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의 체포된 이유는 정치적 발언과 김일성 부자에 대한 비판과 같은 정치적 사안과 탈북 시도, 연좌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자신의 과오로 수감된 경우를 제외하면, 수감자의 일부는 자신이 어떠한 이유로 수감되었는지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부분 막연하게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친척 중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들어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범수용소 수감 경험자들의 체포 과정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모두 영장을 제시받거나, 체포 사유를 설명 받지 못하고 국가보위부 또는 담당 기관원에 의해 임의로 현장에서 체포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마찬가지로 이들에 대한 재판과 이송 과정에서도 공식적인 재판을 거친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보위부는 조사와 예심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심 종결 단계에서 내부적인 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수감을 결정하고, 수형 기간 또한 내부적인 절차를 거쳐서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수감 사실을 가족에게 통보해주지 않기 때문에 남은 가족은 당사자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생각한다.
정치범수용소는 적은 인원으로 많은 수의 수감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수감자들 사이에 위계질서를 세우고 이를 조직화하여 감시 및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또한 법에 기반을 둔 구금 시설이 아니므로, 그 존재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비밀이다. 따라서 수용소의 위치는 대부분 '골'이라고 부르는 형세가 험한 산속 깊은 곳이나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러한 지형 자체가 수감자의 도주를 막는 유용한 차단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자연의 방어막을 따라 인위적 경비 시설도 함께 설치하였는데, 크게 전기 철조망 또는 담장, 구덩이, 흔적 선으로 나눌 수 있다. 전기 철조망은 골짜기를 둘러싼 산줄기를 따라 설치되어 있는데 전기 철조망 밑으로는 깊은 구덩이를 파고 독이 묻은 뾰족한 막대기를 설치한 후 그 위를 표시가 나지 않도록 잘 덮어둔다. 흔적 선은 철조망 주변에 고운 모래를 고르게 펴 둔 것으로 도주자가 있을 시 발자국을 남겨 쉽게 추적하기 위한 것이다. 도주 방지 장치 곳곳에는 이동 초소를 설치하고 경비대가 교대로 상주하며 전기 철조망을 따라 수시로 순찰을 하고 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정치범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목적 외에도 강제 노동을 통해 생산력을 증대시켜 자체적인 수요는 물론이고 외부의 물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범수용소 경비병 출신의 증언에 의하면 수감자들은 '대 건설'로 일컬어지는 핵 기지, 위험한 갱도 공사, 비밀 갱도 등의 시설 건축 현장에 동원되었고 대 건설에 나가서 일을 잘하면 출소시켜 준다는 소문을 내고 이들을 데려갔지만 돌아온 수감자는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북한 당국이 비밀을 요구하는 위험한 공사 현장에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을 동원한 후 비밀 유지를 위하여 이들을 처형 또는 고립된 별도의 지역에 이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3.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해체 노력 필요
북한 당국은 정치범수용소 운영의 주체이면서 해체 역할을 맡아야 할 주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발적인 해체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 외부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위한 주요 외부 세력으로는 유엔과 인권 관련 국제기구, 한국 정부, 그리고 미국과 일본, EU 등 개별 국가, 그리고 국제적 NGO와 한국의 인권 NGO를 들 수 있다. 필자는 이들과의 연계를 통해 하루빨리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기 위하여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유엔 총회와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기구 및 인권 기관의 지속적 관심과 압력이 강화되어야 하고, 북한 당국에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둘째,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를 통한 해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치범수용소의 심각성을 알려 국제사회의 여론 형성은 물론 정치적·심리적으로 북한 당국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셋째, 북한이 가입한 인권 규약 이행을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다. 북한은 UN 회원국으로서 UN 헌장 상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보호하고 증진할 국제 의무가 있으며, 북한이 가입해 있는 국제인권 A 규약, B 규약, 아동권리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의 당사국으로서 국제 인권 조약상의 의무를 이행할 책임이 있다
넷째, 국가별 보편적정례인권검토(UPR)와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유엔인권고등판무관(UNHCHR),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등을 활용하여 정치범수용소의 문제점과 해체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
다섯째, 북한과 대화를 통하여 정치범수용소의 인권 개선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북한 사법기관 종사자에 대한 인권 및 전문성 강화 교육(제3국 초청 교육 포함),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교육 지원, 전문 인력 파견 지원, 법전 편찬 및 배포 지원, 정치범 구금 시설 현대화 지원 등을 주제로 인권 대화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의 인권 대화는 한국 정부와 미국, EU, 유엔 등 다자 간 또는 양자 간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주제별 우선적 대화 파트너 선정과 정보 공유를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이 동시에 필요할 것이다.
여섯째, UN과 산하 기관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협력 사업 진행 시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우선적 해체와 인권 개선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UN 차원의 북한에 대한 지원과 협력 사업 추진 시 공개적 또는 비공개적으로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우선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
윤여상(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 이 글은 「월드뷰」 1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