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프란츠 카프카 | 전영애 역 | 민음사 | 252쪽
너도나도 몰입하는 신흥 종교... 대학敎
돈 버는 일 말고는 의미 없는 일 되어가
카프카, '돈벌이가 최고' 교육받고 자라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 생겨난 신흥 종교가 있다. 너도 나도 그 종교에 몰입한다. 부모들은 앞 다투어 자녀들에게 강요한다. 심지어 정부와 언론에서도 부추기고 있다. 그 곳을 통해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종교는 '대학교'이다.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승리자가 될 것이다. 마치 대학이 종교처럼 되어 버렸다.
대학(大學)이라는 이름을 가진 종교지만, 섬기는 신은 '학(學)'이 아니다. '돈'이다. 취업과 상관이 없는 학과는 '비인기학과'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고, '학문'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취업 준비 학과'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결국 '학구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채 '돈 버는 일'을 향해 아이들을 내 몰고 있다. '돈 버는 일' 말고는 '의미 없는 일'이 되어간다.
<변신>을 쓴 작가 '프란츠 카프카' 역시 '돈벌이'가 최고라는 교육 속에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상업으로 자수성가 한 사람이다. 한 마디로 '돈 잘 버는 상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돈벌이'가 안 되는 '글쓰기' 따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싫었다. 더욱이 아들 카프카에게는 상인의 기질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인문 학교에 진학시켜 법학을 전공하게 했다.
비록 아버지의 강요로 법학을 시작했지만, 카프카는 아버지가 원하는 법관이나 변호사가 되지 못했다. 학업을 마친 그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률 고문 일을 했다.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글을 썼다.
<변신>, 인정받지 못한 카프카의 '자서전'
주인공 그레고르, 어느 날 벌레가 되었다
돈 못 벌어오자 가족들에게서 점차 잊혀
이런 자신의 모습이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을 별종 취급하는 가족들의 시선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변신>은 카프카의 자서전이다.
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벌레가 된다. 소설 첫 문장이 벌레가 되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어느 날 아침, 꺼림직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로 변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얼마나 놀랄 만한 일인가. 소설이 아니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펼쳐진다. 그레고르의 첫 번째 불만은 벌레가 된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이다.
'아아, 어째서 나는 이런 고된 직업을 택했던가! 매일같이 여행이다. 사실 상점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이 든다.' (그레고르의 직업은 의류회사 영업사원이다.)
자신이 벌레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걱정은 오로지 하나. 출근에 대한 것밖에 없다. 이것은 멀쩡한 사람이 벌레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독자들을 더 당황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의 이런 걱정이 오히려 현실적인 걱정이라는 것이 점점 밝혀진다.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하는 그레고르는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 가족들은 벌레가 된 그레고르를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점점 그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돈벌이'를 못하는 그레고르. 그는 가족들에게 혐오스러운 독특한 존재일 뿐이다. 말 그대로 벌레다.
처음에는 벌레가 된 그레고르에게 먹을 것을 주던 가족들은 그마저도 잊어버린다. '그레고르의 방'도 점점 창고가 되어간다. 먼지가 쌓이고, 잡동사니들이 쌓여 간다.
벌레가 된 그는 가족들에게 불편하고 혐오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가족들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옅은 책임감만 가지고 있다. 그 마저도 벗어버리고 싶은 책임감이다. 가족들의 대화다.
"저는 이런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저것'을 없애야 한다는 거예요. '저것'을 먹여 살리려고 참고 견디며 우리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해 왔어요. 아무도 우리를 나무라지 못할 거예요."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레고르 아버지의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쩌면 좋단 말이냐?"
벌레 그레고르는 창고에서 혼자 말라 죽어
죽음 확인한 가족, 오랜만에 평온하게 외출
결국 그레고르, 아니 벌레는 자기 방에서, 아니 창고에서 혼자 말라 죽는다. 그 시신도, 아니 사체조차도 가족이 치우지 않는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늙은 할멈이 치워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저, 옆방에 있는 '그것'을 치워버릴 걱정은 조금도 마세요. 제가 벌써 다 치워 버렸으니까요."
벌레의 죽음을 확인한 가족들은 그제야 평온한 마음을 느낀다. 오랜만에 가족들은 외출을 하고, 서로에게서 희망을 느끼며 소설은 끝난다.
독자들은 가족들이 느끼는 평온함과 희망을 보면서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그동안 가족들에게 얼마나 불편한 존재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카프카는 자신의 모습이 '그레고르'와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돈벌이'를 해야 가족에게 인정받는 존재. 가족들과 다른 삶을 지향하는 그는 '별종'일 뿐이다.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는 '벌레'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변신>을 카프카의 자서전이라고 생각한다.
돈 안 되는 일 자녀가 꿈꾸면 뭐라 할건가
돈보다 꿈 쫓아가는 친구에게 뭐라 할건가
아이들 꿈 갖기 원한다면, 꿈꿀 시간 주라
<변신>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돈벌이'를 못하는 사람이 가족일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황당하게 여겨질 만큼 아니 불쾌하게 여겨질 만큼 우리는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당연하지!' '가족을 돈벌이하는 존재만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우리는 가족을 돈벌이 기계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멋진 대답이다. 훌륭한 대답이다.
이제 질문을 조금 바꿔 보려고 한다. '돈벌이' 안 되는 일을 꿈꾸는 자녀에게 무엇이라고 조언해 주려는가? '돈'보다 '꿈'을 쫓아가는 친구에게 무엇이라고 이야기해 주려는가?
우리 속에도 카프카의 아버지 같은 생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속에도 그레고르의 가족과 같은 부분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 집회를 할 때 가능한 부모님들도 참석하시라고 말한다. 그리고 집회 설교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부모님들 자녀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꿈을 꾸면, 70% 이상의 아이들은 국어 선생님, 영어 선생님, 수학 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강요하는 것이 '국영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진짜 꿈을 가지기 원하시면,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오. 진짜 세상을 변화시킬 아이들이 되기 원하시면 '세상을 알아갈 시간'을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꿈을 강요하지 마세요. 국어, 영어, 수학에 더해서 '꿈' 이라는 과목을 강요하듯이 강요하지 마십시오."
수능 끝난 자녀들, 또다른 경쟁 시작
행복, 돈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어
교회, 그들에게 돈보다 꿈 물어주길
얼마 전 수능 시험이 끝났다. 경쟁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경쟁의 시작이다. 대학교로 내몰리고, 취업 전쟁으로 내몰린다. 꿈보다 값진 연봉을 위해 달려가야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 답을 주려면 '돈'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그 '답'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돈'이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신이기 때문이다. '돈'이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 시험을 마친 아이들. 그들에게 교회만큼은 '대학교'에서 자유로운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등급으로 나누지 않고, 대학으로 나누지 않고. 등급을 묻기보다 고민을 물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대학을 묻기보다 꿈을 물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돈벌이' 안 되는 꿈을 꾸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마음껏 격려하고 마음껏 축하하는, '대학교'를 이기는 '기독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https://cafe.naver.com/judam11